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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건축가
건축스케치는 디자인을 보살피는 과정이다.

가을의 변덕스러움처럼 이쪽, 저쪽을 오가며 한 발짝씩 진보하고 완성되는 것이 건축이다. 그래서 건축은 건축가의 손에 의해서 보살핌을 받으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건축가가 과정을 꼼꼼히 살필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처음 시작하는 건축의 모습은 초라하다. 겨우 한 장의 종이와 하나의 연필만이 필요할 뿐이다. 얇은 종이 위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 그 시작과 끝이기도 하다. 고작 미흡한 한 치의 선긋기로 시작할 뿐이다. 건축의 모든 과정 중에서 스케치는 그 일부이지만 전체를 이끌어가기 위해 방향을 제시하는 흔적으로, 건축가의 생각과 건축의 결과물 사이 중간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특히 관심 있는 프로젝트는 재미있고 즐겁게 괴발개발 추상화 스케치로 진행되기도 한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스케치가 유독 인상 깊은 때도 있다. 스케치 자체는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그리기에는 망설임이 눅진하다.

어린아이가 혼자 이것저것 그릴 때는 알아 볼 수 없는 그림을 잘도 그리더니, 옆에서 이런 것 저런 것들을 그려보라 부추기기 시작하면 아이의 손은 금시에 갈 곳을 잃고 주저하기 시작한다. 스케치는 기본적으로 가벼움에 그 바탕이 있는데, 무거운 이야기는 생각을 마비시킨다. 만일 가볍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눈금이 있는 자로 1㎜를 재어 정밀히 그렸어야 할 일이다. 좀 더 정교히 그린다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당연하듯, 가볍게 생각한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가장 좋은 아이디어로 남을 때가 많다. 비록 덜 그려진 그림처럼 보이지만 이리저리 열심히 꾸준히 그리다 보면 어느 샌가 꽤나 맵시 있는 건축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이가 그렸던 스케치도 편안함을 잘 유지하며 끝까지 마무리하고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른들은 아이의 그림이 금세 좋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들 이야기 한다. 건축가 입장에서는 스케치 한 장이 일취월장 하듯이 좋은 결과물로 바뀔 것을 꿈꾸며 끊임없이 그려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머리가 무겁고 아픈 것이 금세라도 사라지고 기분 좋은 상상력으로 채워지길 기도하는 마음이 스케치의 본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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