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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건축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끊임없이 생각이 떠오른다. 가끔 바라보기라도 했음을 위안 삼으며, 각자가 추구하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상호작용이라 여기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짐작이 틀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설마 하면서도, 괜한 질문을 던져보며 생각했다. 이미 시작됐지만, 언제쯤 결말이 날지 조바심이 앞서 또 쓸데없는 생각만 연거푸 늘어놓았다.

노란 계획지 위에 생각을 늘어놓듯 스케치 몇 장을 연거푸 그렸고, 그 속내를 파악하려는 마음을 추려 담았다. 그려놓은 것들을 내려다보면, 괜한 생각들이 널브러져 있었음을 확인하다.

역시나 괜한 생각으로 시작한 것들은 수포로 돌아가곤 해서, 그나마 생각해서 진척 시킨 것은 스스로가 민망해져 마구 덧칠해 숨겨 버리고 이미 새로운 생각으로 스케치를 하고 있다.

괜히 끝난 만남을 재차 확인해보고 싶어 받아주지 않을 전화를 연거푸 해 보았다. 받아주지 않길 바라면서 한 편으로는 제발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든 손을 놓지 못했다. 손가락의 자존심은 상관없었다.

스케치는 생각중인 건축이다. 어떤 결말도 없는 과정으로서 괜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오만하고 관대한 자신감의 유산이며 좋은 결말을 위한 설익은 사유의 전리품이다.

그래서일까. 스케치를 마치고 나면 항상 마음 한 편이 시리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만 보인다.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듯 여겨져도 마음은 시리고, 아쉽게 마무리되면 더욱 시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나 싶다가도 괜한 정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스케치를 확인하고 나면, 마음 한 구석 그림이 머무르게 된다.

아쉬우면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리라. 스케치를 완성하는 순간, 긴장이 풀려 손을 놓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완성은 오히려 손을 놓게 만든다. 미완의 스케치는 여유로움으로 완결되는 것이고 미완성이 미완결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스케치를 하면서도 항상 부족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는다.

빈 그릇은 채우기 위한 공간이 있는 것이다… 마치 “진흙을 형성하여 그릇을 만들면 그 비어 있는 허공에서 유용성을 찾게 되고 집에 문과 창을 뚫게 되면 그 비어 있는 공간에서 유용성을 찾게 된다”는 것처럼. (건축공간과 노자 사상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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