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신화(神話)는 꾸며낸 이야기다. 고대인의 사유가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이야기, 역사나 설화 따위가 주된 내용이다.

우리 민족의 신화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특히 제주도는 ‘신화의 섬’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많은 신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기록된 우리 신화는 많지 않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의 역사서에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고대국가의 건국신화와 씨족시조 신화 정도다.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도 우리 신화 관련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집집마다 그리스로마신화에 관한 책들은 만화책부터 전집에 이르기까지 몇 권씩 책꽂이에 꽂혀 있다.

심지어 교육방송 장학퀴즈, 대입시험에 그리스로마신화 관련 문제가 출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의 나라 꾸며진 옛날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거기에다 제주도에는 그리스 외 세계최초로 그리스신화 박물관까지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체험교육까지 시키고 있다.

외국신화에 대한 이 같은 몰입 이면에 우리 신화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졌다. 대학에서도 그리스신화, 중국신화, 마야신화 전공자는 있어도 우리 신화 전공자는 없다. 그냥 할머니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로 들려주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도 구전신화라는 방대한 신화의 세계가 존재한다. 마고신화, 천지왕, 대별왕 소별왕, 당금얘기, 바리데기 공주, 삼승할망, 오늘이, 삼태성 삼형제, 자청비, 칠성풀이… 이들은 수천년에 걸쳐 겨레의 삶을 보듬어온 정겨운 우리 신화와 주인공들이다.

다만 그리스신화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구전되다 보니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쳤을 따름이다.

특히 무당의 굿거리 속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을 비롯해 인간에게 복과 풍요, 수명을 내려주는 신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불교, 유교, 일본제국주의, 기독교 등이 미신으로 치부하며 무당을 천시해왔던 의식이 우리 신화마저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돼 버렸다.

거기에다 기록되지 않고 말로만 전해지다 보니 신화의 본래 모습이나 성격이 무엇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제라도 구전신화가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굿판이나 이야기판을 비롯한 전승의 현장을 찾아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몇몇 학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남의 나라 것을 배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자신의 뿌리, 자신의 역사를 아는 게 자기 정체성 확인이다. 그러고 나서 다른 나라 역사와 문화도 배우라는 것이다. 역사는 그 민족의 거울이고 민속은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그리스 신상들이 우리 땅에 상륙하여 그들의 미를 뽐내는데 우리의 신들과 신화는 언제 부활하여 활개 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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