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430년 8월 10일에 호조가 세종에게 아뢴 공법(貢法)에 대한 가부 의견에는 현행 답험손실법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다.  

좌의정 황희 등 5명, 판부사 최윤덕 등 25명, 형조판서 김자지 등 6명,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수령들의 의견이었다.  

좌의정 황희·우의정 맹사성 등 5명은 “우리 조선이 개국한 이래 수손급손법(隨損給損法)을 제정하니, 이는 실로 좋은 법이어서 경솔히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대저 비옥한 전토를 점유하고 있는 자는 거의가 부강한 사람들이며, 척박한 전토를 점거하고 있는 자는 거의가 빈한한 사람들이온데, 만약 공법을 시행한다면, 이는 부자에게 행(幸)일 뿐, 가난한 자에게는 불행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현행대로 시행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하오며, 그 폐단을 구제하는 방안을 아울러 아뢰나이다.

1. 손실 경차관(損實敬差官)을 명망 있는 자를 선택해 임명해 보내도록 하소서. 
1. 경차관을 파견하면 반드시 감사와 함께 상의해 처리하도록 하소서.
1. 손실위관(損實委官)을 답험관(踏驗官)이라 개칭하고 반드시 3품 이하의 현달한 직질을 지낸 자나, 국가고시에 합격한 자로 뽑으소서”라고 아뢰었다.    

판부사 최윤덕·공조 판서 성억 등 25명은 “좋은 땅에 10두를 징수하는 것은 너무 경하고, 척박한 땅에 10두를 징수하는 것은 너무 중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익은 모두 부유한 백성에게 돌아가고, 빈한한 백성들만이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수손급손법은 옛날부터 시행해 오던 세제(稅制)이오니, 구제(舊制)대로 시행하소서”라고 아뢰었다. 

형조 판서 김자지 등 6명이 아뢰기를, “우리나라의 토지에 심은 벼와 곡식이 그 해의 가뭄 또는 장마에 따라 풍작 흉작이 달라지고, 또 척박한 밭들은 몇 해 뒤에 바로 묵어 버리는 것이 상례이온데, 만약 이를 답험하지 않고 공법을 시행해 세금을 거둔다면 잔약한 백성들 중에 어찌 원망하고 탄식하는 자가 없겠습니까. 또 위관의 답험이 잘되지 않고 수령들이 다 심찰하지 못한다 하여 갑자기 옛 법을 변경한다는 것도 역시 온당치 않습니다” 했다. 

강원도 관찰사 조치 등 9명은 “땅의 비옥함과 척박함이 각기 다르고, 묵히기도 하고 개간하기도 하는 등 산 위에 화전(火田)의 경작이 몹시 많으므로, 현행대로 손실에 따라서 조세를 거두소서”라고 아뢰었고,  

경주부윤 조완 등 6명이 아뢰기를, “비옥한 전지는 10%이고, 척박한 전지는 80~90%이니, 좋은 전답을 경작하는 자는 크게 다행할 것이나, 나쁜 전답을 경작하는 자는 불행한 일로서, 실로 고르지 못합니다. 

한 가지 법을 세우면 한 가지 폐단이 생기는 것은 고금의 통환(通患)이오니, 구제(舊制) 그대로 시행하되, 공정·청렴한 관리가 현지를 답험하게 하여, 백성의 편익을 도모하고 국가의 재정을 충족케 하소서” 했다.  

이렇게 호조의 공법에 찬성하는 자는 9만 8657명, 반대하는 자는 7만 4149명으로 찬성률이 57%이나, 공법 시행에 관한 의견이 현행 답험손실법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 공법과 답험손실법을 병행하자는 의견, 공법을 적용하되 차등과세를 하자는 의견 등으로 분분하자, 세종은 공법 시행을 미루고 황희 등의 의논에 따르라고 명하였다. 호조의 조세개혁안을 백지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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