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비교적 괜찮은 경제학자였다. 강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민운동에도 관여했던 행동하는 학자였다. 그것도 ‘경제정의’를 표방했던 시민단체가 아니었던가. 그런 안 전 수석이 경제정의와는 정반대로 최악의 ‘권력형 비리의혹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증거인멸의 우려까지 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에 전격적으로 체포돼 구치소로 가는 운명까지 겪고 있다. 일생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소신도 도의도 없었다

안종범 전 수석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청와대 권력을 막후에서 휘두르며 대기업의 발목을 비틀어 돈을 내도록 압박한 인물이라는 의미다. 일각에서 ‘최순실-안종범 게이트’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라 하겠다. 대기업이 청와대 권력 없이 최순실만 보고 거액의 돈을 냈겠는가. 청와대 의중에 따라 돈이 모이고, 이 돈을 다시 이런저런 명목으로 최씨가 사적으로 편취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안종범 전 수석은 그 주범은 자신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뜻의 발언을 해 충격을 주고 있다. 안 전 수석은 “모든 일은 박근혜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한 것이고 최순실 씨와 박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안 전 수석은 ‘안종범-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실을 강변한 셈이다. 사실이라면 ‘권력의 사유화’를 넘어 막장도 이런 막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쯤 되면 아무리 무력한 검찰이라도 박근혜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핵심은 손도 못 대 보고 수사결과를 맹탕으로 발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안종범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가장 아꼈던 몇 안 되는 경제 전문가였다. 박 대통령 부름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인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어야 했다. 전문가적 지식과 소신으로 국민을 위한 경제정책에 주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안 전 수석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말았다. 비선실세를 위해 재벌의 발목을 비틀었다는 의혹은 충격을 넘어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설사 대통령 지시라 해도 그 자리에서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했다. 그것이 학자적 양심이요, 박근혜 정부가 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안종범 전 수석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챈 것일까.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박근혜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듯한 분위기다. 한 지식인의 나약하고 초라한 말로를 보는 듯하다. 지금까지 뻔히 알면서도 쉬쉬하며 범죄 행위를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모두 박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니. 학자를 넘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알았던 안종범, 정말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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