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20일 감사원은 지난해 말 국토부, LH 등을 감사한 결과 저소득층을 위한 국민임대주택 건설용 예산을 절반이나 싹둑 잘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3년간 국민임대주택 공급 계획예산은 6조 3천여억원이었는데 3조 1천억 밖에 집행하지 않았다. 매년 평균 1조원씩 잘라 낸 셈이다. 사실 연 2조원은 취약계층과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예산이다. 그 예산도 모두 집행하지 않고 매년 1조원씩 잘라 냈다는 것은 이해불가다. 

더 기가 막힌 게 있다. 잘라 낸 예산의 반을 소득 5~6분위 계층을 위한 분양전환임대주택 건설을 확대하는 데 썼다. 저소득층은 외면하고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은 후하게 대하는 사고의 표현이다. 약자 외면 정책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보편 복지를 반대하고 취약계층을 우선한다는 정부의 기조와도 전혀 안 맞는 행동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공임대주택의 재고율을 높일 수 있는 주택은 홀대하고 공공임대주택 재고에서 사라지는 분양전환주택은 우대한 결과다. 이건 공급과 관리에 공공재정이 들어 갈 수밖에 없는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임대주택 수요 통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는 점이다. 월평균소득 이하의 무주택 368만 가구 중에 공공임대주택을 희망하는 가구가 223만호 달했는데 국토부는 RIR(소득대비 임대료 수준)이 평균보다 높은 가구를 ‘소득이 낮아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없는 가구’로 규정해서 108만 가구를 배제해 버렸다. 통계 마사지를 통해 공공임대주택 수요 가구를 축소한 거다. 이 같은 조작된 수치에 기초하여 2013년 장기종합계획을 세웠고 2022년까지 공급목표를 115만 가구로 축소했다. 115만호가 공급되고 모두 재고주택으로 남더라도 필요한 공공주택보다 47%가 부족하다. 현재의 계획으로는 공공임대주택 입주 수요를 충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지역별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영등포구의 경우 서초구에 비해 수요 가구가 배 이상임에도 공급은 서초구의 반밖에 되지 않아 4배 차이가 발생했다. 주거안정성이 취약한 전세임대를 제외하고 영구임대, 매입임대만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영등포구의 수요가구 대비 공급량이 서초구의 18분에 1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준으로 살펴볼 때 안성시의 수요가구 대비 공급량은 하남시의 50분의 1에 불과하다. 이 같은 불균형이 말해 주는 건 영등포구와 안성시의 시민들은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접근 기회가 그만큼 적다는 걸 말해 준다. 지역별로 균형 있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의 행정을 펼치거나 편향된 정책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2013년 국토부는 장기 종합계획에 따라 2022년까지 매년 7만호씩 공공주택을 건설하기로 했는데 지을 땅이 14만 5천호나 부족하다는 게 드러났다. 땅 없이 어떻게 건물이 올라 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택지가 모자라는데 국토부는 LH가 국민임대주택 부지로 승인받은 5만 3271호의 택지를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층이 들어가는 분양전환임대주택, 공공분양주택, 행복주택용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행복주택 물량을 채우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경우도 있다 하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행복주택은 별도로 확보해야 마땅한 일이다.    

국토부가 2012년 실시한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저소득 무주택 115만 가구 중 43%가 영구임대주택을 희망하고 23%가 국민임대주택을 희망했다. 그런데 2013년 영구임대주택 계획물량은 1만호였는데 공급물량은 462호 밖에 안된다. 2013년부터 2016년 10월까지 약 4년 동안 공급된 영구임대주택은 8724호로 계획된 3만호의 21.8%에 불과하다. 국민임대주택도 계획 대비 공급물량은 61.7%에 불과하다.    

22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마트에서 분유와 기저귀, 옷가지 등을 훔친 37세의 남성이 체포됐다고 한다. 가족으로 3살 아이, 6살 쌍둥이 자녀와 부인이 있다고 한다. 본인이 받는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댈 수 없게 되자 생활용품을 훔칠 생각을 하게 됐고 훔친 물건을 다른 지역에 사는 세 자녀와 부인에게 보내 주었다고 한다. 훔친 행위는 나쁘지만 생활고에 짓눌린 삶이 ‘절도하는 삶’으로 몰아가지 않았나 싶다.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는 처지였는데 방 구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 중고차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마음 아픈 일이다. 

공공임대주택은 바로 생활고와 주거난에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돼야 할 우리 모두의 집이다. 그런데 정부는 저소득층이 입주할 공공주택건설에 쓰일 예산을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 계층에게만 접근이 가능한 분양전환용 주택을 짓는 데 써 버렸다. 통계 조작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수요가 적은 것처럼 연출하기까지 했다. 서민을 절망케 하는 행보는 그만 두기 바란다. 조기 대선을 통해 없는 사람과 도시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제일 먼저 손 볼일이 민생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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