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70년대 각종 개발 사업으로 내쫓긴 사람들이 구룡산 어귀에 모여들었다. 1986년 7월 정부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심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빈민가 철거 작업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내쫓긴 사람들이 구룡산 자락에 비닐집을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올림픽 주경기장 건설과 개포동 개발계획 추진과정에서 내쫓긴 사람들도 이곳으로 왔다. 

지금 1100여 세대 22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위용을 뽐내는 타워팰리스가 있고 길 하나 건너면 재건축의 상징이자 ‘고가’를 자랑하는 개포주공아파트가 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의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 쪽은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 쪽은 ‘한강의 눈물’일 수밖에 없다. ‘눈물’과 ‘기적’, 어느 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모두가 함께 살아갈 때 공동체라 부를 수 있다. ‘눈물이 있어 기적이 있는 사회’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그래도 공동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참혹한 사회’라 불러야 할까?  

구룡마을에 또 다시 화재가 났다. 70세 노인 한 분이 유독성 연기를 마시고 화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29세대, 4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1999년 3차례 화재로 수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09년 이후 2014년까지 무려 12차례나 불이 났다. 주민을 내쫓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강하게 일었지만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2014년 11월에는 큰 불이 나서 63세대가 피해를 입고 13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명이 사망했다. 2015년 강남소방서는 ‘구룡마을 소방안전종합대책’을 세웠지만 속수무책이다. 불연제가 아니고 떡 솜과 판자, 목재로 지어져 있어 불이 삽시간에 옮겨 붙었기 때문이다. 

소방 이전에 근본 문제가 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권과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구룡마을 공동체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누구인가? 각종 개발 과정에서 정든 삶터에서 쫓겨난 사람들 아닌가! 국가의 잘못으로 주거권과 삶터를 파괴당한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든지 살아 보겠다고 하는데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사과는 못해도 또 다시 주거권을 파괴해서야 되겠는가? 국민이 보금자리를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그런데 국가가 한 일이 무엇인가? 무허가 지대라는 이유로 구룡마을 주민에게 주민등록조차 못하게 했다.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주민들이 판자와 비닐, 거적으로 겨우 바람과 눈비만 가리고 살게 강제하고 화재에 상시 노출되도록 방치하는 건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인권유린이다. 넉넉한 공간은 아닐지라도 비바람과 추위를 제대로 피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수준의 집을 위한 건축과 수리는 허용하고 집을 안전하게 지을 수 있도록 보장했어야 했다. 만약 판자집, 비닐집을 방치하지 않고 안전한 거주지로 변모시켰다면 이번처럼 히터 만지다가 대형화재가 발생하는 사태는 원천적으로 차단됐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룡마을 화재는 ‘국가의 직무유기와 부작위에 의한 인재’다.

주민들은 구청이 주민등록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자녀들을 가까이 있는 학교에 못 보내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위장전입을 시켜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위장전입’이다. 이건 1960년대까지 미국에서 흑인을 대한 것과 똑같은 차별이다. 인종에 따라 학교를 분리하고 흑인 학생들을 차별하는 바람에 흑인 학생은 가까이 있는 백인학교에 갈 수 없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차별의 성격은 다르지만 둘 다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다. 국가라면 최소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권은 보장해야 할 것 아닌가. 주민들은 주민등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투표권도 제약을 받았다. 20년 동안 싸운 끝에 법원에서 주민의 손을 들어줘서 주민등록을 할 수 있었다.

구룡마을 주민들을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인권유린적인 행위는 주민등록을 못하게 한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기도 안 넣어 주고 수도도 연결시키지 않고 화장실도 없다.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나도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언제 또 원인모를 화재가 일어날지 하루하루 불안에 떠는 삶을 살아 왔다. 골목마다 LPG 가스통이 널려 있다. 또 기름보일러 때는 가구가 많아 화재에 취약하다. 구룡마을 사람들은 화재 위험을 들어 세월호 참사가 예고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강남구청은 구룡마을 주민들을 철거시키려고 수차례 밀어붙였다. 주민들은 끈질긴 싸움을 통해 보금자리를 힘겹게 지켜냈다. 

최근 당국은 구룡마을 개발방식을 결정하면서 주민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고 약속하고 이번 이재민에게도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영구임대주택은 월세가 싼 편이지만 물량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은 보증금도 일정액이 있어야 하고 월세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서울시와 강남구청, SH는 재개발이 끝난 뒤 부담 능력이 생길 때까지 주민들이 월세 없이 구룡마을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대안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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