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당연한 얘기지만 역사 속에는 성공한 혁명보다 실패한 혁명이 훨씬 많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크고 작은 혁명의 실패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가끔씩 성공한 혁명이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게다가 어렵사리 성공한 혁명마저 그에 저항하는 반혁명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힌 사례도 적지 않다. 그리고 혁명세력 내부의 충돌로 인해 혁명이 전복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강고한 기득권 체제를 짧은 기간에 일신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목숨을 내건 투쟁이라 한들 그런 목숨들이 널려있는 것이 혁명사의 교훈이다.

소탐대실이 걱정된다

한 시대를 바꾸는 ‘혁명’에는 그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민심을 얻는 정치력 그리고 혁명세력의 치밀한 전략이 필수조건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구멍이 생기면 혁명은 그 뜻을 이루기 어렵다. 물론 주체적 역량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 역량을 어떻게 폭발시킬 것인가는 결국 혁명세력의 ‘전략’에 달려있는 셈이다. 자칫 ‘소탐대실’이라도 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언제 나아가고 또 언제 물러날 것인가는 결국 ‘전략의 문제’라 하겠다.
혁명처럼 거창한 얘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지금 한국의 상황도 혁명 이후의 분위기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1600만명의 ‘피플파워’가 일궈낸 정권교체, 구체제에 켜켜이 쌓여있는 적폐에 대한 국민적 청산 요구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비단 대통령 한 명을 퇴출시킨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구체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혁명의 역사처럼 그 이후, 즉 지금의 상황이 불안하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그 자체가 충격이지만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방식도 미덥지 못하다. 마치 돌변한 듯한 ‘즉자적 강경대응’은 그 적실성 문제를 넘어서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 마저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국 빈말이 되고 말았다. 정말 우리에게 외교 안보 전략이나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은 심정이다.

내치도 마찬가지이다. 적폐청산을 위한 로드맵은 있는지 있다면 그 대상이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번에도 변죽만 울리거나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할 따름이다. 게다가 인사 문제를 놓고 험하게 다투는 정치권의 모습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적폐청산이나 국정혁신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혁명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혁신에도 전략이 있어야 한다. 혁신의 대의를 위해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지, 국민적 혁신 열망을 어디로 집중시켜야 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건강한 야당의 손을 들어주면서 동시에 더 큰 혁신의 대의에 복무케 하는 것이야말로 여권이 보여야 할 정치력의 진수가 아니겠는가. 날 선 비난을 쏟아내는 최근의 정치행태는 결국 혁신의 동력을 떨어트리기 마련이다. 혹여 혁신이 실패했을 때 또 야당 탓이라 할 것인가. 부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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