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북한이 지난달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쏘는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의 도발이야 상시적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 무게가 좀 다르다. 미국 동부까지 갈 수 있는 1만㎞ 안팎의 사거리에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가능한 수준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거기에 이동식 발사대까지 더하면 북한의 미사일 수준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해 보인다. 북한의 군사기술에 미국이 코웃음 치던 시절은 옛날 얘기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국과 접경 지역에서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쏘아 올렸다. 미국을 향해 보라는 듯이 북한의 ‘전략적 의도’까지 쏘아 올린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 왜 이리 조급한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파 인사들은 북한에 대한 고강도 제재와 군사적 조치, 심지어 중국에 대한 강력한 ‘세컨더리 보이콧’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효력도 현실성도 없을 뿐더러 이전의 오바마 행정부 때도 수없이 거론됐던 ‘단골 메뉴’에 다름 아니다. 이미 약발이 다 떨어진 메뉴를 놓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에게 또 시간만 벌어주는 ‘자충수’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사태의 엄중함을 간파한 핵심 인사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즉시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라며 더 높은 수준의 해법을 제시했다. 미국 본토까지 위협 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성과 적극적인 협상을 주문한 것이다. 목소리만 높이며 현실에 눈을 감았던 이전 정부의 실책을 반복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로써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북미 간에 보다 현실적인 협상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 길 외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태도가 참으로 딱해 보인다.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 1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면서 사드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환영영향평가를 건너 뛸 수는 없기에 ‘임시 배치’라는 ‘꼼수’를 부리긴 했지만 사실상 추가 배치를 지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문제는 ‘주권 문제’로서 절차적 정당성과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수없이 반복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북한의 도발을 이유로 이런 절차도 없이 밀어 붙이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때는 북한의 도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즉자적 대북조치’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리고 사실 북한 ICBM이 성주의 사드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지금도 성주에서는 주민들이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는 원칙과 주권을 말하더니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원칙도, 주권도 성가신 존재에 불과한 것인가. 사드 추가 배치 지시로 문재인 대통령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국민적 불신과 대외적 고립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앞으로는 무엇을 믿고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조삼모사에 다름 아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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