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혐의가 있으면 수사한다.”

검찰은 늘 이렇게 밝혀왔다. 법을 위반했다거나 범죄 정보가 있으면 수사한다는 원론적인 언급이다. 취재기자로 검찰청을 출입할 때 그랬다. 필자 귀에 못이 박히게 아마 수십 번도 더 들은 말이다. 특히 대형비리 사건 수사 브리핑에서 자주 듣던 말이다. 그러나 빤히 혐의가 있는데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애써 수사에 나서지 않은 경우가 왜 없었겠는가. 그리고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데도 억지로 엮어 넣으려 들이대고 오버한 경우가 왜 없었겠는가. 어려운 법 조항도 모르고, 검찰청이라는 크고 높은 건물과도 거리가 먼 일반 대중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쳐진다. 고무줄 논리였다. 수사 착수 여부에 관한 검찰 잣대가 정치적이었거나 형평에 어긋나는 예가 분명히 없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적폐청산에는 당위성이 있다. 그런가하면 검찰 수사는 충견(忠犬)에 의한 하명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검찰수사에 정치보복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결국엔 둘 다 옳은 얘기 아니겠는가. 검찰수사, 잘 해도 욕먹고 못 해도 혼난다. 오죽했으면 검찰간부 승진 인사 때 언론이 인사평을 쓰면서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OO수사를 무난히 처리했다’고들 소개했을까. 엄정하게 법대로 수사하면 될 국가기관이 검찰이다.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이 좋아 무난했다고 했지만 차마 나쁘게 혹평하지 못해 그렇게 전했을 뿐 아니겠는가. 굳이 풀어 말하자면 첨예하게 대립된 두 당사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예민하게 불거진 사안을 정치권에서 더 큰 말썽이 빚어지지 않게 솜씨 있게 정치적으로 잘 요리했다는 얘기다. 검찰이 당면한 과제는 어제도, 오늘도 마찬가지다. 맨날 동경지검 특수부를 부러워하게만 놔둬서 될 일이 아니다. 허울 좋은 말뿐인 ‘중립성’과 ‘독립성’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검찰의 제도적 개혁은 꼭 필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에 시달리는 정치검찰, 이대로는 안 된다.

검찰은 자기모순에 빠지면 안 된다. 검찰이 써야 할 특수활동비 가운데 매년 20억~30억원가량을 수사 담당기관도 아닌 법무부가 써온 것으로 밝혀졌다. 특수활동비는 수사관련 활동에 써야 한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정보·수사 등 국정수행 활동’에 집행하도록 돼 있는 예산이기 때문이다. 애초 검찰이 쓰게 돼 있는 특활비를 검찰 인사권과 지휘·감독권을 쥐고 있는 법무부가 미리 떼고 주거나, 줬다가 돌려받은 후 법무장관 등이 쌈짓돈처럼 써온 것은 문제다. 법무부에 원래 특수활동비가 있고 이를 검찰이 받아쓰는 구조라는 게 현행법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똑같이 수사해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아 쓴 것이 뇌물 또는 부정한 상납이라고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다.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 때 국정원 특활비 1억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은 지금 수사 중이다. 때문에 모두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납득이 된다.

사정(司正)기관에 대한 사정은 누가 해야 하나. 검찰이 적폐청산의 칼을 휘두르느라 바쁜 가운데 문재인 정부 출범 6개월째 검찰개혁 방안이 오리무중이다. 대선 때 약속한 고위공직자수사처를 제도화하려 하지만 논란의 대상이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옥상옥’이라거나 ‘맹견(猛犬)’이라는 말로 반대한다.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는 공수처장 임명방식을 탈(脫)정치적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전향적으로 협의에 임하는 게 옳다. 누가 공수처장을 추천할지, 수사범위를 어디까지로 할지 등 공수처 중립화·독립화 방안에 대해 여당의 양보를 받아내며 적극 입법화에 나서야 할 일이다. 검찰을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무릇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권력기관이 견제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원칙에만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

청와대는 물론, 정치권이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공수처가 검찰 개혁에 유일무이한 방안이 아니다. 더욱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도 아니다. 올드하기 짝이 없는 상명하복 규정과 검사동일체 원칙부터 깨뜨려야 한다. 서둘러 검찰청법을 개정해야 한다. 직무 성격을 감안할 때 검사는 법치주의와 정의 관념이 투철해야 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필수적이다. 필자는 검찰총장 등 임명에 국민이 선출권을 갖게 확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검찰이 탈선하거나 민의에 반하면 곧바로 검찰총장을 소환하는 국민리콜제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공수처장도 마찬가지이다. 사법공직자에 대한 임면권을 국민에게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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