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그들이 개헌을 알까. 개헌의 핵심이 무엇인지 청와대와 여당만 모르는 걸까, 아니면 정치공학과 꼼수에 함몰된 걸까. 정당마다 생각들이 따로국밥인 상황에서 국회 개헌 특위가 개헌안 발의에 합의할 수 있을까. 법을 일반 국민의 것으로 돌려세우는 진정한 의미의 개헌이 가능할까. 제왕적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한 87년 체제가 새 옷을 갈아입게 될까. 세종시는 명실상부하게 완성된 행정수도로 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공화국 건설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지자체가 중앙 정부와의 의견 조율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제2국무회의 제도화, 지방입법·행정·재정·복지의 4대 지방자치권의 헌법 명문화, 지방정부로의 포괄적 사무 이양을 비롯한 재정분권 및 자율성 확대를 약속하자 지자체가 반색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지방 분권을 하겠다면서 세종시에 대한 로드맵은 빠졌다. 대선공약이었고 국정 100대과제에 명시돼 있던 세종시를 외면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세종시를 조성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이미 만들었다면 낭비와 비효율을 극복해야 한다. 국회를 이전하고 세종시를 완성형 행정수도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문제는 현 정부와 여당이 세종시를 외면하고 있는 데만 있지 않다. 그동안 대부분의 대통령이 그랬듯이 문 대통령도 얼마안가 레임덕에 빠질 것이라든가, 각 정당별 이해관계에 따라 권력구조와 정부형태, 선거제도 개혁 등을 놓고 여야가 동상이몽인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 개헌이 왜 필요한가. 그것은 글로벌 기준에 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부분과 권력이 어느 한 쪽에 과도하게 집중된 전근대적 권력구조가 우리 사회 전체를 비민주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제적(專制的) 대통령제라는 구시대적 시스템이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 등으로 하여금 국민보다는 위쪽을 바라보고 줄서게 만들어왔다는 사실이다. 1894년 12월 12일 제정된 홍범 14조 선포 후 120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미성숙 단계이다. 힘이 각 전문분야에 골고루 분산·위임되지 않고 한 쪽에만 쏠려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강국 한국의 민도는 높다. 반면, 정치는 안타깝게도 이에 걸맞지 않다. 경제를 살리고 세월호 사고 대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집중형 헌법을 권력분산형·분권형 헌법으로 고쳐야 한다. 민주적 의사결정구조에 따른 민주적 절차, 적법절차에 따라 결론을 도출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기본권 조항부터 시대에 맞게 다듬어야 한다. 소통과 통합, 남북통일을 향한 기대를 반영한 제도적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국민소환권, 국민투표권, 국민발안권, 행정요구권 등을 추가해 국민 참정권을 대폭 보완해야 한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불량품을 리콜하듯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이 탈선하거나 무능하다면 소환하자. 생명권, 행동의 자유, 알권리, 사회보장적 권리, 소비자권리 등 국민의 자유권적 기본권을 선진국 수준으로 명시해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왜 제도화하지 못하는가. 개헌에 권력구조 개편이 빠지면 팥소없는 찐빵이다. 그러나 진실로 알아야 한다. 개헌은 대통령 권한만 분권화하자는 게 아니다.

국가 권력 자체의 분산이 필요하다. 입법권력, 사법권력, 행정부권력 모두를 분권화시켜야 한다. 공공기관, 경제계, 문화계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독점적, 독선적 권력집중이 풀려야 한다. 정책결정에 민주적 절차에 따른 국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내각 구성에 관한 권한도 없이 허울만 좋은 ‘책임총리제’를 그대로 둘 것인가.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권력을 분점하고 한 편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 대의기관인 국회는 또 어떤가. 국민을 배신한 채 사시사철 정쟁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국회는 양원제로 권력을 나눠 일하는 국회상을 정립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그들만의 형식적 논리와 기득권에 빠진 사법부도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보다 민주적으로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를 해나갈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개헌의 역사적 당위성을 이해하고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주체가 누구인가. 먼저 청와대가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대승적인 자세가 돼야 하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개헌 시계를 뒤로 멀리 돌리고만 있는 국회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공직자와 정치인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촛불민심을 진실로 섬기고 헌법 정신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주권재민의 원리를 망각하면 안 된다. 진영이기주의에만 몰두해 개헌을 또 미뤄서는 국민을 분노케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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