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디지털 정보통신기술(ICT)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산업 간, 영역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융합의 시대, 노라인(No Lines)이란 혁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비즈니스 모델과 기존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산업 형태와 경쟁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애널리틱서비스(HBRAS)는 전 세계에서 783명의 기업인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응답자의 80%가 디지털이 산업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2020년 이후에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 1층의 ‘아마존 고’는 ‘No Lines, No Checkout(줄 없음, 계산대 없음)’으로 유명하다. 직원들은 자기가 내려 받은 애플리케이션을 입구에 있는 개찰기에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계산이 끝나고 문이 열리면 원하는 물건을 가져 나오기만 하면 된다. 아마존 고는 온·오프라인 경계를 허문 것이다. 아마존은 온·오프라인, 제조와 서비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없애는 ‘노라인 혁신’의 상징이다.

노라인(No Line)이란 기술의 발달로 각종 경계가 소멸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이용자들이 계산을 하기 위해 실제 줄을 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음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가 소멸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가상현실(VR)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해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점차 사라지는 것도 노라인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복제기술 등의 발달로 복제 와인, 복제 고기, 심지어 편집 인간(Edited Human) 등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노라인은 이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스타벅스, 넷플릭스 등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주도하는 첨단 혁신 트렌드이다. 기업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비스업과 제조업, 가상과 현실 등 기존 비즈니스를 구분 짓는 선을 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아마존은 137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유기농 식료품점 홀푸드를 통해 유통과 생산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세계 최대 커피회사인 스타벅스는 모바일 결제회사로 변신 중이다.

세계적인 노라인 혁신 조류에 대응하지 못하면 세계 1등 기업이라도 몰락한다. 지난 8월 세계 최대 장난감 유통회사 토이저러스 본사가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미국의 유명 의류업체인 리미티드와 아동의류 업체 짐보리, 신발 유통체인 페이리스 슈소스가 이미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대형 백화점 시어스 홀딩스, 할인매장 99센트스토어, 패션 어패럴 제이크루 등도 파산 직전이다. 아마존처럼 온라인에 기반 한 대형 업체들의 공세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반면 급변 환경에서 혁신으로 살아남은 기업들도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연구·개발투자를 늘리며 디지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전환했다. 포드는 단순히 자동차를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라 이동수단에 대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인터넷 기업도 링크드인을 인수하는 등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맥킨지도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AI)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디지털 데이터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전통산업의 경계를 다시 그리고 있다”고 했다. 맥킨지는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노라인 비즈니스가 2025년까지 60조 달러 규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킨지는 노라인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생태계 마인드 확보, 데이터에 대한 신뢰, 고객과 깊은 정서적 유대,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을 제안한다.

그러나 산업 간 경계를 허무는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에어비앤비와 우버, 앤트파이낸셜 같은 스타트업들은 한국에서는 설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노라인 혁신은 각종 규제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혁신성장이 소득주도 성장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 하겠다”는 말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규제가 혁파되고 노라인 혁신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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