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난 2016년 9월에 첫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시작한 신고리 5호기와 준비 중이던 6호기가 문재인 정부에 의해 일시 중단된 지 3개월 만에 공사가 재개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 대선 공약을 지키느라 5·6호기 건설공사를 중단시켰지만 이로 인해 공사 재개와 중단 여론이 팽팽히 맞서자 정부에서는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를 설치·운영토록 했고, 마침내 공론회위원회에서는 3개월간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건설 재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던 것이다.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 471명이 참가해 숙의 과정과 설문조사, 위원회의 조사내용 확인 등 절차를 거쳐 마련한 집단지성(集團知性)의 결과는 ‘건설 중단(40.5%)’보다는 ‘건설 재개(59.5%)’였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또 향후 원전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축소 53.2%, 유지 35.5%, 확대 9.7%’라는 정리된 의견을 제시하는 한편, 이 지역에서 원전 건설이 재개되더라도 중단을 선택했던 참여단의 의견을 존중해 원전의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신재생 에너지정책을 확대하면서 원전주변에 거주하는 주민의 생명·건강에 대한 안전 보상도 함께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에너지정책은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는 대선공약인 탈원전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 원전 건설을 점차 축소해 2079년 ‘원전 제로(0)의 해’로 만들고, 신규 원전 건설 전면 백지화, 월성1호기의 영구폐쇄  등을 결정했다. 이 조치들은 정권을 잡은 정부·여당이 대선공약을 지키기 위한 약속이니 가능한 일이긴 하나 한창 진행 중이던 신고리5·6호기에 대한 일시 중단 조치 결정은 야당으로부터 초법·졸속정책이라는 반발을 가져오기도 했다.

당초 계획대로 잘 진행돼 왔던 신고리5·6호기 건설에 들어간 직접비용만 해도 약 8조 6254억원 가량이다. 4~5년 후 원전 2기가 완공되면 향후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탈원전 정책으로 전환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원전 건설과정에서 탈원전 옹호론자 등 반대파의 건설 중단 목소리가 있기는 하겠지만 국가의 장기적인 에너지정책에 따라 이미 건설 중에 있는 상태라 이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갈등을 잠재울 수 있는 입장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신고리5·6호기 중단에 신중을 기해야 했지만 쉽게 결정한 감이 없지는 않다. 통상적으로 볼 때 정부의 신규정책 결정이 어렵지만 추진 중인 정책에 대한 수정 또는 폐지는 더 어렵고, 그야말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이번 신고리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결정도 마찬가지다. 이미 에너지정책상 필요해 사회여론과 정책적 분석을 거쳐 최종 결정된 것이고, 게다가 해당 원전 건설로 상당한 매몰비용이 발생했음에도 정부에서는 탈원전 정책이라는 대선 공약에 집착해 섣불리 결정한 감이 없지는 않다.

신고리5·6호기를 중단한 이면에는 원전 건설을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읽혀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잘 진행되고 있던 공사를 중단할 리가 있겠는가. 여기에는 대선공약 지키기라는 명분이 있을 테지만 공론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결국은 건설 재개로 굳어졌으니 시간과 비용만 허비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공론화 과정에서 사용된 정부예산 46억원도 적은 돈이 아닐 뿐더러 공사 중단으로 인해 현장 유지 관리비용 등 1000억여원의 손실이 발생된 것이다.

굳이 정책적 득실(得失)을 따지자면 정부가 원전 건설을 재개하면서도 탈원전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나갈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을 마련했다는 점과 공론화위원회가 보인 갈등 관리의 해결 능력이다. 특히 찬반의 사회갈등으로 치닫던 이 지역의 원전 문제를 정리하는 동시에 숙의과정을 통해 얻어낸 에너지 정책 결정의 민주적 과정,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실험대는 큰 수확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중요 사안을 두고 양쪽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대립될 경우 이를 조정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결정이 나고서도 한동안 후유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의 경우처럼 원전 건설 재개 의견이 약 60%로 앞섰지만 건설 중단을 주장했던 자들이 수용하는 대신에 원전관리 투명성 등 보완 정책을 내놓았으니 갈등 관리에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대처였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5·6호기공론화’라는 값비싼 대가로 얻은 이번 경험을 통해 사회문제 중 하나인 탈원전에 관한 정책적 당위성 확보라는 소득을 얻었다. 또 찬반여론이 팽팽한 사회갈등 문제에 관해 숙의민주주의의 실험대를 성공적으로 거둔 것은 향후 갈등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처럼 대형 국가사업 중단 결정에서 국민 의견 미청취 등의 결여는 국민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판단 하나로 원전 건설 공사 기간이 지연됐고, 게다가 공론화 과정에서 쓰인 돈 46억원 외에도 나랏돈 1000억여원이 더 들어가게 된 바, 이 돈이면 서민을 위해 요긴하게 쓰일 데가 많다. 신고리5·6호기공론화를 두고 감동적인 결과라는 목소리가 있지만 섣부른 건설 중단으로 예산만 낭비했다는 쓴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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