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레퀴엠 포 안티고네’ 공연 모습 (출처: 서울연극협회 홈페이지)

배우, 사회자 지령 따라 감정 없이 연기해
관객, 인간 존엄·국가 법 사이 고민하게 돼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예술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미학적 완성도가 균형을 이룬 작품을 발굴하는 ‘서울미래연극제’가 지난달 27일부터 진행 중이다. 연극제의 마지막은 크리에이티브팀 지오의 ‘불행한 물리학자들’과 극단 가치가의 ‘레퀴엠 포 안티고네’가 장식한다.

‘레퀴엠 포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재구성한 연극이다.

테바이의 왕 크레온은 반란을 일으키다 죽은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를 금지한다. 그는 나라의 지엄한 법을 어긴 자는 그 누구라도 처형 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크레온의 조카이자 폴리네이케스의 동생인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체를 몰래 장사지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크레온은 국법을 어겼다며 조카를 지하에 잡아 가두고, 안티고네는 국법보다 높은 천륜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공연은 다른 연극에서 보기 어려운 연출을 시도했다. 인물도, 관객도 아닌 사회자를 전면에 내세워 극의 전반을 이끈다. 사회자는 객석 뒤쪽에서 등장한다. 안티고네의 비극의 뿌리인 오이디푸스 신화를 들려주며 관객의 집중을 유도한다. 극이 시작하면 사회자는 배우들에게 대사와 동작을 지시한다.

배우들은 감정을 담지 않고 건조하게 대사를 읊는다. 사회자의 지령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기괴하고 어색하다.

극의 흐름에 빠져들지 못하도록 한 연출은 지루한 느낌을 준다. 배우의 연기는 극의 몰입을 막는다. 하지만 이런 시도 덕분에 관객은 작품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관객과 등장인물을 철저히 분리시킨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 존엄이 우선인지, 국가 기강이 먼저인지를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20일 공연 직후에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진행됐다. 한승수 연출은 서사 밖의 사회자를 등장시킨 이유를 밝혔다. 그는 “관객이 인물에게 깊이 빠지지 못하게 사회자를 등장시켜 객관화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며 “천륜을 따른 안티고네가 맞는지, 나라를 번영시키기 위해 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한 크레온이 옳은지 관객 스스로 판단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연극 ‘레퀴엠 포 안티고네’는 오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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