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17일 경찰이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데 무려 700일이 걸렸다. 촛불항쟁에 따른 대선을 치르고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도 5개월이나 지나서야 사과를 한 건 보통 찜찜한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내용이다. 사과가 두루뭉술하다. 상황에 밀려 사과를 억지로 하는 듯한 모습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가장 큰 책임자라 할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기소자 명단에서 제외한 점이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 사용으로 사망했음에도 물대포 사용을 안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는 점도 큰 문제다.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는 소지를 남기는 행동이다.    

18일 JTBC에 따르면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직후 시점인 지난해 10월 초에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관련 기관에 책임부정·사건왜곡·사과거부 지침을 하달했다. 조직적 정치적 대응방침이 담겨 있다. 목적은 백남기 농민 사인 조작·은폐다. 박근혜 정권은 진실을 은폐하고 여론의 흐름을 돌리기 위해 백남기 농민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나섰다. 2016년 10월 6일 검찰은 가족들이 반대했음에도 부검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이 기각되자 또 다시 영장을 신청하는 객기를 부렸다. 결국 영장은 발부됐고 서울대병원에 경찰력이 투입됐다. 많은 국민들이 서울대병원으로 집결해 경찰의 영장집행을 막지 않았다면 경찰은 끝내 부검을 강행했을 것이고 엉뚱한 사인을 내밀었을 것이다.   

검찰은 영장 신청 이유로 빨간 우의 타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검찰은 “피해자가 위 직사살수에 맞고 넘어진 직후 피해자를 구조하려던 빨간색 우의 착용자가 넘어지면서 피해자를 충격한 사실이 있어 피해자의 의식불명 등 상해 결과에 영향을 미친 원인행위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경찰은 이보다 10개월 전에 이미 빨간 우의를 수사하고 사건을 사실상 종결처리했다. 2016년 10월 17일 서울지방경찰청 김정훈 청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경찰은 지난해 12월 11일 채증 등을 통해 ‘빨간 우의’의 신원을 특정하고 조사를 진행했고 지난 3월 ‘빨간 우의’를 집시법 위반과 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로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빨간 우의’를 상대로 백남기 농민을 가격했는지는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유족이 고발한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이 고발 건을 수사할 때 다룰 일이라는 것이다. 검찰에는 빨간 우의의 신원 특정에 대해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을 누가 믿겠나? 

이 대목에서 꼭 짚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정부의 사건 축소, 조작, 왜곡 의도에 장단 맞추어 빨간 우의 타격설을 퍼트렸다. 국회라는 공적 담론의 장을 불의한 목적으로 이용했다. 다음에서 인용한 세 의원의 발언록은 다소 길지만 우리가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옮긴다. 

2015년 11월 19일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에서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은 “영상이 약간 모호하지만, 빨간 상의를 입은 한 사람이 쓰러진 농민에게 주먹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들이 고소고발을 했는데 해당 농민의 상해부위 등 위증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수사 초기에 면밀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인사청문회에서 김진태 의원은 일베에 있는 동영상을 직접 틀고 “다쳐서 끌려가는 노인을 빨간 우의를 입은 청년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 가서 확 몸으로 일단 덮친다. 백씨가 우측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다고 하는데, 저기 다른 사람이 가서 구호조치를 하려고 하는데 굳이 가서 올라타는 모습이 보인다. 이게 상해의 원인이 됐다고 보여지는데, 철저히 수사해보라”고 김 후보자에게 주문했고 김 후보자는 “총장에 취임하면 이런 부분들에 철저한 수사를 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화답했다.  

빨간 우의 타격설은 지난해 10월 11일 열린 국회에 다시 등장했다. 일부 극우·보수 단체가 빨간 우의를 고발한 직후다. 국감장에서 나경원 의원은 “동영상에 보면 빨간 우의 입은 사람이 계속 나온다. 어제인가 건국대 이용식 교수가 빨간 우의가 뭔가 원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발표를 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데 그 논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선 역시 부검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물었다. 김진태 의원은 “얼굴뼈는 왜 부러졌나? 빨간 우의는 왜 돌아가신 분 위에 올라타게 된 거냐? 이거를 더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물었다. 

일베사이트에 올라온 편집본 말고 오마이뉴스, 뉴스타파 등에서 올린 동영상을 보면 빨간 우의 타격설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자 의도적 왜곡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의원은 정권과 극우성향의 일부 그룹의 주장에 부화뇌동해서 고인과 유족을 모욕하고 진실을 덮으려는 박근혜 정권에 충실히 봉사하는 역할을 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정치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백남기 농민 사인을 두고 빨간 우의를 언급해서 고인을 능멸하고 유가족의 가슴을 후벼 판 정치인들은 이제라도 사과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게 예의다. 계속 같은 생각을 고집하고 사과를 회피하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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