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어제로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부정적인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평가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개정 타령이다. 자유한국당에서는 태스크포스까지 꾸렸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서도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놓고 개정을 외치던 더불어민주당에서 목소리가 잦아진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김영란법을 개정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특히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앞장서고 있다. 김영록 농축산식품부 장관도 개정안에 힘을 싣고 있다. 장관은 자신과 관련된 분야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선임된 게 아니다.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사실은 국민의 위임을 받아 역할을 하는 존재다. 국민을 대변해야 하는 게 장관의 역할인데 자신이 담당하는 직역에만 매몰돼 특정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장관 자격이 의심스럽다.

시기마다 끼어드는 또 다른 정부인사가 있다. 바로 이낙연 국무총리다. 총리는 말 그대로 국민의 총의를 모아가야 하는 사람인데 인사청문회 때부터 김영란법 개정을 암시하더니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개정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총리직이 특정 분야 대변자인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다른 정부도 아니고 촛불항쟁으로 태어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부패방지법의 둑을 무너트릴 수 있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고 있음에도 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김영란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문 대통령은 정부를 잘 이끌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목표가 ‘반부패 개혁으로 청렴한국 실현’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1년을 평가해 보면 김영란법은 청탁금지법으로서 자리를 착실하게 잡아가고 있다. 기업의 접대비가 감소한 데서도 바람직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공무원들이 식사나 선물을 받지 않으려는 풍토가 만들어진 것은 커다란 변화다. 시민들도 공직과 공직 연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거나 선물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풍토가 생겼다.

개정안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도 김영란법을 통째로 개정하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법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숫자 놀음을 하고 있다. 현행 3·5·10(식사-선물-경조사) 체제를 바꾸자고 한다. 여러 가지 숫자 조합을 들이민다. 10·10·5 또는 5·10·5, 5·10·10 다양하다. 단순한 숫자놀음 같아 보이지만 식사 한도액을 3만원에서 5만원이나 10만원으로 높이고 선물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높이는 건 김영란법 전체를 무너트릴 방안이다.

왜 공무 또는 공무에 준하는 직군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해야 하고 밥을 사야 하는가? 3·5·10 규정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아예 하나도 못주고 못 받게 만들어야 한다. 이 규정 자체를 없애야 바람직하다. 김영란법 원안 자체가 현실과 타협의 산물인데 이 규정마저 무너트리려는 건 노골적으로 부패를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선물 또는 식사 가액을 두 배 세 배로 높이면 부패를 그만큼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실상 김영란법은 무력화되고 말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후보는 10·10·5를 공약했다. 자유당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대책 태스크포스 의원들은 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국내 생산 농축산물을 김영란법 규제대상에서 제외해주는 법을 조속히 통과시키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태스크포스 소속 한 의원은 박은정 권익위원장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김영란법 시행을 눈앞에 두고 국회 농해수위는 “시행령에 규정된 음식물·선물 등 가액 범위를 상향 조정하거나 그 시행을 유예할 것을 촉구한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금 정부와 정당, 국회에는 그때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김영란법은 전 국민의 관심 속에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부정부패방지법이다. 그동안 부패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돈세탁방지법과 부패방지법 같은 부패를 막는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김영란법처럼 국민들의 사랑 속에 태어난 반부패 법률은 없다.

법이 제정되는 과정은 물론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국민들은 김영란법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도 김영란법 관련 기사만 뜨면 국민들은 댓글로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부정부패방지법을 지키고자 하는 국민의 마음이다. 여론조사에서도 김영란법이 개정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게 바로 주권자의 뜻이다. 주권자의 뜻을 존중하고 성실히 실천하는 게 정치의 핵심이다. 김영란법 자구 하나 고치지 말라. 이게 민심이다.

현재 김영란법 개정 주장은 부패방지를 위한 그물의 구멍을 크게 넓히자고 외치는 꼴이다. 특정 직군의 수익이 줄었다는 논리로 정의로운 법률의 기준을 무너트리자는 주장은 공동체에 백해무익하다. 특정 직군에 대한 지원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업에서 줄어든 접대비를 모아 기금으로 조성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적정량의 쌀값 보장과 농축수산물, 화훼 농가에 대한 세제 지원,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가구에 대해서는 보조금 지원도 생각해 봐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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