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재를 아는가. 각 지역마다 선조들의 삶이 지명과 문화재 등을 통해 잘 남아 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덜 인지할 수 있다. 이에 각 지역에 남아있는 문화와 역사의 소중함을 알아보는 내 고향 역사탐방을 함께 떠나보려 한다.
▲ 외규장각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나라 4번째 큰 섬 강화도
고려궁지 안 위치한 외규장각
왕 열람하던 어람용 의궤 보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침탈
프랑스국립도서관서 발견 후
145년 만에 조국의 품에 안겨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 서울에서 2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다. 섬이지만, 선사시대부터 조선까지 다양한 시대의 역사가 담겨 있다.

강화(江華)라는 지명은 940년(태조 23)에 처음 등장했다. 강화는 강과 관련된 지명으로, 한강·임진강·예성강 등의 ‘여러 강을 끼고 있는 아랫고을’이라고 하여 강하(江下)라고 부르다가 ‘강 아래의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으로 강화(江華)라고 고쳐 부른 듯 보인다. 특히 조선왕조 의궤를 보관하던 외규장각이 있던 곳이 바로 강화도다.

▲ 고려궁지 정문ⓒ천지일보(뉴스천지)

◆고려시대 궁궐이던 강화고려궁지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 부근에 위치한 외규장각은 고려궁지 안에 있다. 원래 이곳은 고려 시대 궁궐이 있었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년(1232)에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후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했다. 하지만 몽골과 화친해 환도(1270)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했다.

▲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 보던 건물 강화유수부 동헌이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왕이 행차 시에 머무는 행궁 외에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을 건립했다. 하지만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됐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현재의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궐의 영역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본래는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대규모 공간이었다.

고려궁지는 1964년에 사적 제133호로 지정됐고, 1977년 강화 전적지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됐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시대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 등이 남아 있다.

◆왕실 서적 보관하던 ‘외규장각’

고려궁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강화유수부 동헌이 있다. 강화유수부 동헌은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 보던 건물이다. 건물 구조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단층집으로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정비됐다.

강화유수부 동헌을 바라봤을 때 왼쪽 위편에는 외규장각이 있다. 넓게 깔린 잔디 위에 홀로 서 있는 외규장각. 겉으로 보기에는 건물 하나지만, 역사를 지켜온 곳이었다. 이곳은 조선 정조 때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됐다.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역할을 했다.

▲ 의궤를 보관하던 외규장각 ⓒ천지일보(뉴스천지)

특히 이곳은 왕이 친히 열람하던 어람용 의궤를 보관했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특별하게 비단을 사용했고, 종이는 고급 초주지(草注紙)를 사용했다. 해서체로 정성들여 글씨를 쓴 다음 붉은 선을 둘러 왕실의 위엄을 더했다.

또 의궤 외에도 족보, 도장을 비롯한 왕실 관련 문서가 다수 소장돼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규장각 의궤는1866년(고종3)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약탈당한다. 당시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297권의 왕실의 주요행사를 기록한 의궤 191종(유일본 30종 포함) 297책을 포함한 도서 359점을 약탈했다.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19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촉탁 직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에 조선시대의 도서가 보관돼 있음을 발견하고 목록을 정리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박병선 박사와 시민단체, 정부의 협력으로 의궤반환 운동을 추진했고, 1993년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순조22)’ 1권이 먼저 반환됐다.

▲ 의궤를 보관하던 외규장각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이후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정상회의 중 한국과 프랑스 양국 정상의 합의가 체결되고 후속 조치에 따라 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게 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강화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145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선왕조 의궤 제작

 

의궤 편찬은 도감(都監)이라는 임시기구에서 주관했다. 조선 초기부터 제작됐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대체로 5~9부 정도 제작됐고, 임금의 열람을 위해 고급 재료로 화려하게 만든 어람용 1부가 포함돼 있었다.

정조 대부터 왕실의 잔치나 기념행사에 관한 의궤는 활자본으로 제작되면서도 보다 많은 양이 보급됐다. 당시 어람용 의궤는 대부분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내졌다. 나머지는 관련 관서나 사고에 분상해 보관했다.

오늘날 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파리국립도서관, 일본 궁내청 등이다. 그 수는 약 630여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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