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란 밥상. ⓒ천지일보(뉴스천지)DB

화훼·고급식당, 시행 전보다 매출 하락
농축산 생산자 “명절 특수 사라져 피해”

“공직자들 청탁 거부 근거” 긍정 평가
‘소비위축’ 주장엔 “산업정책 해결 사안”
‘청탁’이 곧 ‘부패’라는 인식 전환 성과

[천지일보=강병용·김빛이나 기자] 서울 남대문시장 꽃도매상가 예림꽃집에서 지난 20일 만난 윤대현 사장은 “김영란법 시행 전과 비교해 매출이 30%이상 줄었다”면서 “승진이나 인사이동 때에 꽃, 화분 주문이 많았는데 요즘은 아예 없다”고 토로했다.

◆그저 울고 싶은 꽃집, 고급식당, 농·축산업자

윤 사장은 “평소에 팔리지 않으니 화훼농가들이 꽃농사를 안 한다. 꽃을 소비하는 행사가 집중된 시기가 오면 꽃값이 폭등한다”고 했다. 그는 “꽃 주문을 받아도 법 위반은 아닐까 걱정돼 가족, 형제 사이인데도 받을 사람에게 먼저 ‘보내도 되는지 확인’ 후에 보내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손님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런 사정을 얘기하면 10명 중 8명은 마음을 접는다”고 했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 고급 식당가에서는 3만원을 넘지 않는 ‘김영란 세트’를 내놓기도 했다. 현재 고급식당가의 분위기는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 있는 고급일식집을 찾았다. 이곳은 일반 손님 외에도 업무상 접대를 위해 공무원, 회사원 등이 많이 찾는 음식점 중 하나다.

이보영(가명, 20대) 주임은 “주로 고위직급 손님이 많이 오신다. 전화예약을 할 때 ‘김영란 메뉴’가 있는지 아직도 자주 물어본다”며 “이럴 때는 보통 2만 8000원짜리 메뉴를 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 시행 전후 매출 차이가 많이 난다. 김영란법 시행 후로는 사람들이 만나는 것도 꺼리고 선물도 안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어민들은 “김영란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가 위축돼 농·축·수산업의 피해가 너무 크다”며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수산물을 제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황엽 전국한우협회 전무는 “평소 명절이 되면 매년 15%정도 가격이 오르는데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올해는 전혀 가격 변동이 없다”며 “추석을 염두에 두고 소를 키워 출하하는 농가가 많은데, 이제 추석 특수는 사라졌다”고 하소연했다.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1주년을 닷새 앞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 화훼공판장 지하꽃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청탁이 곧 부패’ 인식 전환

어려움을 겪는 이도 있지만 김영란법 시행 1년을 앞두고 나온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김영란법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공직자도 청탁을 명확하게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정청탁, 선물을 빙자한 금품수수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내년 12월까지로 돼 있는 현재 시행기준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동화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김영란법으로 인한 ‘경제 위축’ 주장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는 없다. 경제단체들은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지만 통계청 자료나 카드승인 내용을 보면 청탁금지법 시행 전후로 큰 차이가 없다”며 “피해를 본 업종이 있다면 이는 산업정책을 통해 해결해야지 반부패정책의 완화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모호했던 ‘청탁’의 개념·유형이 명확해진 측면도 있다.

한유나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차장은 “무엇보다도 ‘이런 청탁이 부패의 하나일 수 있겠구나’라고 인식이 전환돼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양세영 홍익대학교 겸임교수는 “지금 시점에서 완화론도 있지만 생각보다 적발이 많지 않았고 3·5·10 등 작은 부분에 치우치다보니 거대한 비리, 큰 액수의 금품수수나 청탁은 아직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사익추구를 막고 공정성을 유도하기 위해서 비상조치처럼 내려진 법이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적용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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