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특수학교 논란이 뜨겁다. 특수학교나 일반학교나 배움을 나누는 곳이라는 점은 같다. 왜 특수학교 설립 시도가 뜨거운 쟁점이 돼야 하는가. 타인인 나도 분노감이 치솟는데 당사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분노조차 표현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탓에 아무 죄도 없고 아무 잘못도 없는 학부모들이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나만 알고 남은 외면하고 짓밟는 사회, 어려운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을 생떼 쓰는 ‘별종들’의 ‘쇼’로 치부하는 사회, 이런 사회를 뭐라 이름 지어야 하나? 미친 사회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해체 위기의 사회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이미 해체의 끝자락에 놓인 사회라고 해야 하나? 

무대는 서울 강서구이지만 강서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특정 지역만 그런 게 아니고 대한민국 땅 어딜 가나 똑같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차별과 배제가 일상이 된 사회, 우월감과 멸시가 보편화된 사회, 불평등과 억압이 일상화 된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누구는 대한민국에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한강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비단 특수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동복지시설, 노인복지시설, 장애인복지시설, 공공임대주택, 행복주택, 협동조합주택을 지으려고 하면 갖은 이유를 갖다 붙이며 머리띠 질끈 묶고 결사반대한다. “결사반대!”는 그런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소외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시설인데 “우리 동네에 들어 와서는 안된다”고 한다.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들과 상생과 공존을 거부하는 몸짓에 다름 아니다. 

복지시설이나 공공주택, 장애인 시설이 들어설 때 반대하는 숨은 논리가 집값하락이다. 아파트 소유주들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낸 표현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고 돈 버는 수단이다. 아파트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삶터고 몸과 마음을 쉬는 곳, 이웃과 정을 나누고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아파트는 힘 안 들이고 돈 버는 재테크 수단이고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다. 자기 돈을 동원해서 샀든 빚을 지고 샀든 아파트값이 내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용인할 수 없는 선택지다. 집값 부흥 사회의 후유증이다. 

복지시설,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동네 이미지 나빠져서 아파트값이 내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아파트 소유주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강력한 괴력을 지녔다. 아파트 동대표, 부녀회를 필두로 집값 하락 방지, 집값 상승 기회 박탈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움직임은 격렬해진다. 마침내 아파트 주민 누구도 감히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게 되고 결국 복지시설은 목숨 걸고 반대해야 하는 지고지선의 가치가 돼 버린다. 아파트 주민 모두의 도덕성을 마비시키고 공존공생의 공동체 의식을 사라지게 만드는 괴물로 발전한다. 

자신은 그렇게 살면서도 자식들에게는 대의를 말하고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이중인격적인 삶이 일상화됐다고 해야 할까. 이들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이 크면 어떤 인간형으로 살아갈까. 부모 세대로서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이라고 강조하는 이들이 있다. 겉모습만 거창하고 화려할 뿐 속은 썩었다.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잊어버린 사회에 희망은 없다. 세계수학대회, 과학대회에 나가서 1등하면 무엇 하나. 세계에서 1등 한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데 씁쓸한 느낌이 남는 것은 대한민국의 무한 경쟁이 낳은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남기 때문이다. 1등 제일주의는 공동체도 망치고 나라도 망친다.

박정희 군사정권 이후 한국은 효율 만능주의, 성장제일주의, 경쟁지상주의,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가 돼 버렸다. IMF 이후에는 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소득과 자산 불평등은 구조화됐고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디를 가나 경쟁 결과는 점수화되고 경쟁에서 승리하면 정당성을 인정받는 사회가 돼 버렸다. 무한경쟁 속에 빈익빈 부익부의 삶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대로!”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이대로 가면 한국은 망한다. 

강서구 특수학교는 개교돼야 한다. 이번에 뜻이 꺾이면 앞으로 특수학교는 물론 새로운 복지시설이 문을 여는 건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우리 지역은 안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국민들이 스스로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고민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면 슬픈 가운데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한 가지 고민되는 것은 강서구 주민들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우리 자신의 삶은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특수학교 사태’는 도덕성 상실과 공동체성 실종에 대한 우리 모두의 책임을 일깨운다. “학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외침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교육권은 모든 국민의 권리이다. 

정부도 크게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복지시설 건립을 적극 설득해서 실행하지 않고 다음 선거 때 표를 의식한 나머지 물러나고 또 물러나기를 반복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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