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1996년 여름 쿠바 아바나에 월드리그 배구 취재차 갔을 때의 일이다. 한국과 쿠바 남자배구대표팀의 경기가 아바나 실내체육관 ‘시우다드 데포르티바’에서 열렸다. 체육관은 세계 상위랭킹의 쿠바 배구 수준에 비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올림픽 4연패에 빛나는 무적의 아마헤비급 복서 테오필로 스테벤슨 등 세계적인 쿠바 스포츠 스타를 비롯해 1만여 관중이 들어찬 체육관은 창문 곳곳이 깨지고 천장에서 비가 새는 등 시설이 아주 노후화됐다.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해 보였지만 경기는 전혀 상관없이 정상대로 벌어졌다. 2연전에서 한국이 모두 패한데다 낡은 경기장 때문에 씁쓸한 뒷맛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오랜 미국의 경제봉쇄로 경제난에 허덕이던 쿠바는 당시 돈이 없어 체육관, 공원, 학교 등에 대해 보수공사를 하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었다. 카스트로의 쿠바혁명으로 모범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꿈꾸었지만 쿠바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1천만명이 안 되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남녀배구, 야구, 아마복싱, 육상, 유도 등에서 세계적인 경기력을 갖췄던 쿠바 스포츠는 1990년대 들어 점차 약세를 면치 못했다. 낙후된 모습의 실내체육관은 당시의 쿠바 현주소를 잘 보여주었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겔링은 1982년 사회무질서에 관한 ‘깨진 유리창의 이론’을 발표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문제점을 미리 개선해야만 향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이론이다.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건물을 보고 관리를 포기한 것으로 생각해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리게 된다. 더 나아가 그 건물에서는 절도, 강도 같은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빈 집, 빈 공장터에서 불량배들이 모여들어 경범죄와 중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난 21일 SNS와 인터넷 검색어를 통해 ‘비 새는 돔구장’이 큰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돔구장으로 인기가 높은 고척스카이돔에서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넥센 히어로즈 경기도중 빗물이 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2천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되며 최첨단 시설로 2년 전 개장한 돔구장 천장에서 비가 새리라고는 구장 관계자들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전천후 야구를 즐길 수 있다고 자랑해왔던 서울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는 이날 처음 샌 것이 아니라는 데 더 문제가 있었다. 지난해 5월 LG와 SK 경기가 열리던 중 천장에서 관중석으로 물이 떨어지기도 해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경기 진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돔구장 부실 관리에 대한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돔구장 누수는 평소 철저히 방수대책을 세우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일반 가정집도 지붕에서 빗물 새는 데를 미리 잡지 못하면 나중에는 수리하기가 어려워서 큰 공사가 될 수 있다. 하물며 수천억원을 들인 공공경기장에서 비가 샌다면 정상적인 경기를 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관중들에게 큰 불편을 줄 가능성이 높다.

돔구장 개장 이전에는 프로야구 팬들은 비가 오면 프로야구를 볼 수가 없었다. 우천으로 경기가 순연돼 프로야구를 제때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돔구장 개장으로 이제는 미국, 일본과 같은 야구선진국처럼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사소한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총체적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돔구장 누수는 이번에 철저히 방수대책을 세워 관리하고, 앞으로 더욱 돔구장 서비스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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