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경비원들을 해고하기로 방향을 잡았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철회됐다. 천만다행이다. 경비원에 대한 해고가 일상사가 된 현실에도 불구하고 “더 내겠다”면서 해고를 막아낸 주민들의 훈훈한 마음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왜 경비원의 해고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나서야만 할까? 만약 주민 누군가가 나서지 않았다면 경비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해고위기 때마다 주민이 나설 수는 없는 일이고 주민이 나선다고 반드시 해고를 저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경비원의 운명은 여전히 바람 앞에 등불 신세다. 

경비원은 노동자다. 노동자가 해고에 상시 노출돼 있다는 것은 비정상 중에 비정상이다. 국민이면 누구나 주권을 누려야 하듯이 노동자는 누구나 노동권을 누려야 한다. 노동자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일터를 빼앗기는 것이다. 최저임금이나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는 것도 서럽고 갑질을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해고의 두려움까지 더해지니 경비원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해고의 불안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해고는 가정으로 말하면 호적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다.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더라도 집에서 내쫓는 것과 같다. 마음이 특별히 따뜻한 누군가가 있어 해고를 모면하는 게 아니라 합당한 이유가 없는 한 해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방향으로 제도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의 지원이 불가피한 경우는 적극 지원해서 해고를 막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대동사회가 꿈이었다. 김구 선생의 말대로 “네오 내오 함이 없이 한 집이 되어” 살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사회가 바로 대동사회이다. 민족의 얼을 이어받고자 하면 바로 대동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해고는 대동사회의 반대쪽 극점에 있다. 부족한 살림일지라도 함께 나누고 더불어 사는 게 대동사회의 모습니다. 세계 13대 경제대국이자 무역 1조 달러를 구가하는 대한민국이다. 함께 나누고 상호 존중하기는커녕 공존조차 못하고 힘든 사람들 일터를 빼앗는 야만이 횡행해서야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낯 들고 다닐 수가 없다. 후손에겐 뭐라고 할 것인가.        

대동사회는 공동체사회로 바꿔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함께 나누는 사회가 공동체사회다. 일부가 독점하고 차별과 배제, 억압을 자행하는 모습은 우리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후진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3월 강남의 한 고급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전등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관리소장이 주민회장에게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하면서 분쟁이 생겼다. 주민회장이 관리소장에게 욕을 하면서 “종놈 아니야 네가! 종놈이 내가 시키는데!”라고 소리 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월급을 자신이 주니까 종놈이라는 논리다. 관리소장이 “당신은 뭡니까?” 하고 묻자 주민회장은 “나는 주인이야, 너희 놈들은 월급을 받는 놈들이야. 알았어? 건방진 XX들,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하면 돼!”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갑을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면서 아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권리가 얼마나 유린되고 있는지 잘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헌법에는 민주공화국과 인간 존엄성, 차별금지가 명시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머리 싸매고 고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정면으로 맞대면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부 아파트에서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하는 문제 또는 설치된 에어컨 켜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경비실은 땡볕에 노출돼 실내 온도 4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 많은데 지금까지 비용 논리를 들어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설치한 에어컨도 가동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물론 없던 에어컨을 설치하고 가동한 단지도 있고 주민들이 나서서 에어컨 켜지 못하도록 한 것을 번복하게 만든 곳도 있었다. 주민이 에어컨 여러 대를 기증한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리고 해고 위기에 몰렸다가 주민들이 나선 덕에 위기를 벗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래도 사람 사는 모습이 남아 있다”고 안도하면서 내 일 같이 기뻐했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다. 

극단적인 갑질에 분노해 분신자살까지 하는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야 경비원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상시적인 해고 위협 문제가 공론화됐다. 경비원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막자는 뜻에서 제출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고 오는 9월 시행된다. 하지만 법률 규정이 모호하고 처벌규정이 없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국회와 정부가 만든 법률 가운데 처벌 규정이 없거나 약해서 있으나마나 한 법률이 수두룩하다. 처벌 규정이 없다는 건 개혁의지가 없다는 걸 뜻한다. 말만 요란할 뿐 변화를 위한 법적 근거는 만들지 않는 못된 습성이 작동된 결과다. 

해고는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경비 노동자들을 함부로 해고할 수 없고 갑질을 막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국회와 정부는 경비노동자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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