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지난달 28일 북한이 ‘화성–14형’ 발사 직후 틸러슨 국무장관 등의 행정부 인사들에게 “북한 정권 붕괴 이후의 상황에 대해 미·중이 사전에 합의하면 북핵 문제 해결에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잃을까 불안해하는 중국을 달래기 위해 북한 붕괴 후의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할 것임을 미리 약속하고 북핵을 제거하는 작업에 공조를 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키신저의 말을 두고 말들이 많다. 한국에선 주로 보수 매체들과 보수세력이 목소리를 높이는 소재로 쓰고 있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언사를 사용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을 충실하게 발전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미국이 한국의 의사와 상관없이 중국과 빅딜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다. 보수 매체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키신저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북핵 제거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버릴 수도 있다는 키신저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는 거다. ‘김정은 교체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보수층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키신저의 상상을 좀 더 발전시켜 보자. 미중 연합 작전으로 북한이 무너진 경우를 가정할 때 북한 땅 가지고 흥정하는 경우와 통일 한국 가지고 흥정하는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을 무너뜨리는 데 누가 기여하느냐에 따라 북한 땅에 대한 영향력이 달라질 것이다. 북한을 완충지대로 만들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중심이 되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일부 나라들을 더 끼워 신탁통치를 하는 경우도 생각해 봤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한국 중심으로 통일이 되는 경우도 생각은 했을 것이다. 짧게 소개된 그의 말을 통해서는 키신저가 정확히 어떤 상황을 상정하고 말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북한을 신탁통치하는 경우 주한 미군 대부분을 철수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통일 한국에서 미군 대부분을 철수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키신저 말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시사점은 우리 몰래 우리 민족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 땅이 신탁 통치되는 사태가 올 수도 있고 중국의 속국이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통일 한국은 요원한 일이 되고 우리는 영토 수복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건 새로운 전쟁이 시작됨을 뜻한다.   

키신저는 미중수교를 진두지휘한 인물이고 한중수교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70년대 초 국무장관으로서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키는 데 앞장 선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때는 트럼프의 외교 가정교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미 행정부에 계속 자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전력을 가진 인물이기에 그의 말은 가볍게 듣고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총기 잃은 노인의 잠꼬대라고 폄하해서도 안된다.

‘키신저 뉴스’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돈다. 우선 리영희 선생이 생전에 한 말이 떠오른다. 2003년 4월 10일 열린 ‘이라크 파병안 국회 통과와 반전평화 긴급 토론회’에서 리 선생은 “현재 실리추구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중국이 20~30년 내에 미국에 대립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대신 대만을 회복하려는 시나리오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대만을 포기하고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는 빅딜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선생의 생각은 상상에 그칠 수도 있고 언젠가는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다고 하면 중국은 상당히 큰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미국 역시 북한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대만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리 선생은 멀리 내다보고 후세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 비록 상상에 그치는 말이 될지라도 리 선생의 경고는 귀담아 들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리 선생의 말에서 얻게 되는 시사점은 외세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외세 문제를 가볍게 보게 되면 우리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될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운명이 타율적인 힘으로 결정된다는 무서운 경고인 것이다. 

키신저와 리 선생의 말대로 된다면 한국과 북한 몰래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한쪽은 미국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한쪽은 우리 민족의 생존이라는 관점에 제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성이 없다고 하지만 그냥 가볍게 지나쳐도 좋은 말은 아니다.  

조선 말 우리나라는 외세에 휘둘렸다. 처음엔 청나라, 다음엔 일본, 그 다음엔 청나라, 그 다음엔 일본에 휘둘렸다. 지금 정세가 조선 말과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통일 국가였는데 지금은 분단국가라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구성원 또는 민족 구성원이 뭉치지 못하면 외세의 말발굽 아래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무장력이 없다면 너무나 쉽게 침략을 당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민족의 미래를 외세가 결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극단적인 대립을 극복하고 민족적 지혜를 모아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을 찾아내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