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군함도는 태평양전쟁 이후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당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대, 석탄을 생산할 인구가 부족하자 일본 정부는 1938년 공표한 국가총동원법을 근거로 한국의 젊은이들을 강제 징용했다.

조선인들에게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의 갱도는 해저 1000m를 넘고 평균 45도 이상의 고온이었으며 가스 폭발 사고에 노출돼 있었다. 이처럼 노동 환경이 열악한 해저 탄광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은 하루 12시간 이상 채굴 작업에 동원됐다고 전해졌다. 그중 일부 조선인들은 탄광 사고,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했으며 도망을 시도하다 바다에 빠져 익사하기도 했다.

국무총리 산하 기관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사망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 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 실태 기초 조사(2012)’에 따르면 1943년에서 1945년 사이 500~800여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징용돼 강제 노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섬에서 사망한 이들은 공식 집계 134명, 누락되거나 은폐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군함도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조선인들이 해저 1000미터 깊이의 막장 속에서 매일 가스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며 노역해야 하는 상황을 그렸다. 주인공 이강옥(황정민)의 시선에서 바라본 군함도는 지옥이자 어떡해서든 딸 소희를 데리고 탈출해야 하는 일본군의 만행의 장소로 여겨진다.

군함도는 6만 3000㎡ 정도 면적의 섬에 40여동(건물 번호로는 71동까지)으로 구성돼 있다. 말 그대로 바다에 떠 있는 거대 군함과 같은 모습이다. 유대인 집단학살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비교할 수 있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학대와 강제노동의 산 역사이기도 하다. 일본은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본은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산업유산으로서 보편적인 가치에 착목해 이 유산의 등재를 추천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메이지 일본이 근대화를 이뤄가던 시기는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이기 때문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시기(1938~1945년)와는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영화 군함도는 착한 조선인, 나쁜 일본인만 묘사한 게 아니다. 영화는 조선인을 등지고 나라를 팔아먹고 매국행위를 저지른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때 힘없고 무지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당하는 일반적인 사례와 더불어 비인간적인 일제 만행에 생존하기 위해 동참한 비열한 조선인도 표현되고 있다. 영화 군함도에서 위안부 말년(이정현)의 대사처럼 “돈 벌게 해주겠다고 꼬드겨 팔아넘긴 것도, 위안소의 포주도 조선인”이었다. 말년이 말한 그 조선인들은 여전히 이 사회에 뿌리박고 있다.

최근 한국영화들 속에서 유난히 역사를 되돌아보며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추고 진실을 파헤쳐가며 역사를 바로 알자는 소명의식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그리는 스토리텔링과 선은 분명 한계가 있다.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강제징용을 해서 강제노동을 한, 강제사역이 된 아주 범죄적인 노동을 자행한 곳이 어떻게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느냐는 짚어내지 못했다. 일반 블록버스터 영화같이 영웅주의, 애국심, 남녀 로맨스, 배신자, 생존만을 향해 달려가는 무리들을 반복적으로 그려냈지만 현재 군함도가 대한민국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일본이 반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리얼리티를 담지 못했다.

영화 군함도가 이번에 그렸듯이 군함도에서 힘을 합쳐 탈출해 나가는 조선인들의 협동심에 대한 선을 넘어 이후 현재 반영되는 일본인들의 진실된 반성, 원폭, 피폭 당시 상황, 조선인들의 휴머니즘을 디테일하게 삽입하지 못한 점 등이 아쉽다. 다만 영화 군함도는 강제징용 노동자를 다룬 첫 번째 대표작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스토리로 향후 그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 생산될 수 있는 첫 번째 신호탄이라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상업영화에서 관객들이 좋아하는 액션과 히어로를 배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강옥의 시점에서 다루는 영화인지, 박무영(송중기)의 제3자적 관점에서 다루는 영화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전체적인 플롯을 제3의 인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군함도에서 벌어지는 일본인들의 만행, 조선인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조선인, 조선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웅, 오직 딸을 위해 탈출만 생각하는 아버지 등 직접 전쟁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느끼고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메신저가 부재해 전달성이 떨어져 보인다.

지금은 영화의 작품성, 플롯, 미장센을 평하기보다, 많은 관객들이 잊혀졌던 혹은 무지했던 역사를 바로 알고,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인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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