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문재인 정부는 25일 국무회의를 통해 가계소득을 높임으로써 소비를 촉진하고 생산을 유발하는 ‘소득주도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14년부터 소득주도 성장론을 꺼내 들었고 대선 때는 공약으로 내걸었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해 또 다른 성장론의 아류라고 평가절하 하는 사람도 있고 진정한 성장 계획은 빠져 있는 인기영합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논란이 있지만 소득주도 성장론이 어느 한 쪽으로 부가 몰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 있는 한국 현실을 정확히 짚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4년 11월 ‘소득주도성장 토론회’로 이름 붙인 자리에서 소득을 높여 줌으로써 성장을 가져 올 수 있는 방안이 있고 생활비를 줄여줌으로써 소득을 높이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다소 길지만 관련 발언을 옮긴다. 

“생활비를 줄여 주는 것도 생활소득을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특히 정부의 정책실패가 전세대란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파트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70% 수준까지 올라 사상최고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중산층과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전월세상한제 실시로 주거비 부담을 완화해줘야 중산층과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2015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갑을 관계, 중소기업, 노동개혁과 함께 주거를 4대 민생개혁 의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새누리당이 민생을 말한다면 우리 당이 발의해서 오랫동안 논의해온 전월세상한제와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 법안을 더 이상 발목잡지 말고 이번 정기국회에선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면서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권 제도는 18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다. 이들 제도는 지난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공약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2009년 이후 당론으로 밝히거나 목소리를 높여온 제도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 갑자기 달라졌다. 문재인 후보 진영이 방향을 확 틀어 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당황했다. 

대선을 앞두고 ‘17개 주거 단체들’이 7명의 대선 후보들에게 5개 주거 의제에 대해 공약으로 채택할지 물었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의견을 보내 왔는데 문 후보는 의견을 보내오지 않았다. 당에서 공식후보로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공식 후보로 선출되지 않은 다른 당 유력 후보들이 대부분 답변을 보내 온 걸 생각할 때 답변을 회피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후보들의 답변을 정리해서 발표한 시점은 물론 각 후보 진영 정책 담당자와 토론과 질의 시간을 가진 시간까지도 의견을 보내오지 않았다. 

이후 거듭 재촉을 해서 겨우 답변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토록 주장하던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즉시 도입”은 사라져 버렸다.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면서 임대인이 ‘인센티브에 따라 자발적으로’ 임대차 등록을 한 주택에 한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 방법은 ‘단계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방법이다. 두 제도의 도입이 오로지 임대인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계적 도입”이라고 포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줄곧 주장해 온 제도이기 때문에 아예 빼기는 부담스러워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권 도입을 “단계적으로” 하려고 한다면 임대차등록을 실행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계획은 없다. “인센티브 제공에 따른 임대차등록”이 전제 조건인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현재 임대소득세를 내는 임대인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인센티브로 내세울 만한 게 사실상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하고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임대차등록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순진한 생각이다. “어느 천년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모르긴 해도 문재인 대통령이 정책 담당자들에게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권을 ‘지금 도입해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방안인데 하루아침에 “막연한 미래의 시점”으로 미뤄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했을 때 닥치는 신뢰의 위기가 크다는 점을 모르지도 않을 것이다. 문 후보 진영의 주거정책을 담당했던 일부 사람들이 일종의 ‘주거정책 농단’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말은 곧 믿음이고 정체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줄기차게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권을 주장해 왔다. 그것도 당장 실행해야 할 일로 발표하고 그렇게 하라고 정부여당을 압박하기까지 했다. 소득주도 성장에 핵심적인 제도로 소개하기도 했다. 초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일관성은 더없이 소중한 가치이다.  

전월세상한제 같은 주거안정화 제도는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법이 없다. 단계적이라는 말이 ‘경기도 먼저! 이어서 서울’ 이런 방안이 있을 수 없고 전세 보증금 규모별로 구분하는 방안이 있을 수도 없으며 ‘전세 먼저하고 월세는 나중에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도 없다. 현실성 없는 “단계론”을 철회하고 관련 제도를 즉시 도입해서 주거난에 허덕여온 2300만 세입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 주기 바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