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출처: 연합뉴스)

남은 위안부 생존자 37명

[천지일보=임혜지 인턴기자] “짓밟힌 내 삶이 불쌍하고 억울해서라도 내가 살아있는 한 사과를 받아내야 합니다.”

2007년 2월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미국 하원 결의안 청문회에서 김군자 할머니는 위안부 생활을 기억하며 당시 이렇게 증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23일 오전 8시 4분 향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로써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37명밖에 남지 않았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17살 때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다. 당시 구타와 심한 폭행으로 왼쪽 고막이 터져 김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가야만 했다. 3년 동안 7번의 자살시도도 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두만강을 넘을 때는 함께 탈출했던 친구 1명이 강물에 떠내려가 죽는 것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돌아와 사랑하는 남자와 동거를 했지만 남자는 곧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에서 얻은 아이도 5개월이 지나지 않아 김 할머니 곁을 떠났다.

그 후, 1998년도부터 ‘나눔의 집’에서 10명의 위안부 할머니들과 지내왔다.

나눔의 집은 “김 할머니의 생전 소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빈소는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이다.

정현백 여성가족부장관도 이날 김군자 할머니의 사망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정 장관은 유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담은 조전을 보낼 예정이며, 여성가족부가 장례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정 장관은 취임 후 첫 현장행보로 ‘나눔의 집’을 방문해 고 김군자 할머니를 만나 “앞으로 정부는 할머니들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전한 바 있다.

정 장관은 “올 들어 피해할머님이 벌써 세 번째로 돌아가신 것이어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여성가족부는 김군자 할머니를 포함한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회복을 위해 기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께서 노후를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실 수 있도록 생활안정 지원에 더욱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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