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병

김남조(1927~  )

 

불치의 내 상사병
백년세월에도 못 고치는 만성질환이
죽을 죄로 부끄럽습니다
철거덕 철거덕 철로 위를 달리는
무쇠바퀴 한 틀도
더러는 멈추었다 가련만
원수 같은 상사병은
나 죽은 후에도
심장이 살아남아 두근두근
맥박 치면 어이 할까요

아닙니다
생손톱 하나 뽑아 피 묻은 그대로
그 사람의 속주머니에 
넣어 보내지도 못했으니
참 상사병이나마 되겠는지요
그저 아득합니다
아득합니다

 

[시평]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래서 그 병은 백년세월에도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 마냥, 철거덕 철거덕 철로 위를 달리는 무쇠바퀴 한 틀도 더러는 멈추지만, 죽은 후에도 심장에 살아남아 두근두근 맥박 칠 것 같은 아, 아 그 상사병.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 어떠한 희생도 어떠한 고통도 모두 감내해 낼 수 있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도, 그래도, 그래도 부족한 듯이 느끼는 것이 진정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그 사람 이승을 떠나던 그 날, 그래서 사랑하는 그 사람 마지막 그 모습 보내던 그 날, 생손톱 하나 뽑아 피 묻은 그대로 그 사람의 속주머니에 넣어 보내지도 못했다는, 그 생각으로 참 상사병이 되지 못한다는 그 처연함. 그래서, 그래서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고, 또 위대한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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