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묵자의 정치적 목표는 ‘일동천하지의(一同天下之義)’ 즉 천하의 의를 통일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과정은 선악을 보거나 들으면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윗사람의 옳고 그름에 따른 판단에 아랫사람이 복종하면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생각과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오로지 윗사람의 사상과 의지에 맞추어야 한다는 전제주의의 색채가 너무 짙지 않은가? 요즈음 사람들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펄쩍 뛸 것이다. 묵자가 중앙집권적 전제주의 국가론을 가장 먼저 주장했다고 비판한 학자도 적지 않다. 양준광(楊俊光)이 대표적이다. 근거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본질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묵자사상에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이념과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묵자의 ‘의’라는 개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묵자의 의는 하늘의 뜻에 근원을 둔 공의(公義)이다. 그렇다면 그의 의는 개성을 말살하거나, 전제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순종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그가 말한 하늘의 뜻은 민의라는 실질적인 잣대로 잴 수 있는 것이다. 묵자에게 민의의 기본은 의식주의 풍족함과 편안한 생활이고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의’이다. 묵자는 봉건주의 또는 전제주의자가 아니라 부민(富民)주의자가 아닐까?

묵자의 상동론은 이론적 측면에서 민주주의적 색채가 짙지만, 실행과정에서는 전제권력을 강화하는 밑받침이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많다. 현대의 파시즘처럼 개인을 방대하고 치밀한 국가조직의 도구로 간주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살육과 전쟁을 계속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은 연합국헌장에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이 성명은 나중의 세계인권선언에서 더욱 진보된 내용을 포함했다. 이 선언에서 규정한 ‘의’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인류의 기본적인 가치기준과 행동준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도 실천과정에서 전제주의와 독재주의에 이용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묵자의 의가 상향적이 아니라 하향적이므로 결국 통치자가 전제권력을 수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을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하향적 가치관이 반드시 독재로 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조직에서 공유하는 가치관이 발생하는 기제는 대부분 하향식이다. 조직문화의 연구자들은 모든 조직의 가치관은 처음 조직을 창시한 사람이나 지도자의 개인적 가치관을 기초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강제로 주입된 가치관도 일단 성공하면 모든 조직구성원이 공유한다. 공유된 가치관은 모두 자기의 가치관으로 인정하게 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묵자는 혈연관계가 기반인 종법제도에 따른 정치를 철저히 부인하고, 정치권력은 반드시 공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직은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인에게 공개돼야 한다. 지역, 혈연, 직업, 출신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공직에 등용돼야 그가 주장한 의정이 실현될 수 있다. 보통 사람의 대변자였던 그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공직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선진시대 제자백가 가운데 매우 독특한 사상을 보여주었다. 묵자의 이상 국가에는 상하의 등급은 있지만, 각자의 역할에는 차별이 없다. 모든 사람은 인격적으로 평등하다. 그러므로 서로 평등하게 사랑하고 이익을 나누어야 한다. 수고하지 않고 그 열매만 얻으려는 무임승차족이나.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것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짓이다. 이러한 묵자의 이상은 개인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주도하는 계급사회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고대인은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도 오랫동안 독특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섰던 그의 이상은 지구의 반대쪽에서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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