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국내 주요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면 대개 중고 책을 다루고 있다. 이미 책을 구한 사람이 그 책을 중고 서점에 팔고, 서점은 다시 일반 독자에게 그 책을 되파는 방식이다. 여러 가지 혜택을 주면서 책도 모으고, 중고 책을 사는 사람에게도 상품권 같은 미끼를 내걸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책을 쓴 사람은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팔린 책값의 10% 안팎으로 저작권료를 정한다. 작가는 새 책이 서점에 가서 독자에게 팔릴 때 판 수량에 따라 계산한 저작권료를 받는다.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살 때는 어떨까?

특허권이나 저작권 같은 지식재산권은 일반 재산권과 권리 성격이 다르다. 지식재산권은 형태가 없기에 무체재산권이라 부른다. 무체재산권은 수없이 반복해 쓰더라도 값어치가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지식재산권에는 권리 소진이론이라 하여, 지재권이 붙은 물품을 정식 가격을 주고 샀다면 그 물품이 후속 유통될 때에는 그에 붙은 권리가 없어졌다고 보고 더 사용료를 물지 않고 거래해도 된다. 소진이론을 적용하면 중고 책은 저작권료를 물지 않아도 된다.

‘사람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저작물이라 하고, 저작물을 만든 사람은 자기 작품을 독점 사용할 권리를 갖는다. 저작권이다. 저작권은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 저작물 작성할 권리들이다. 저작권법은 이런 권리를 침해하면 엄하게 처벌한다.

중고 서점에서 책을 팔면 새 책이 팔리지 않는다. 저작권료는 작품을 누리거나 작품을 거래하면서 생긴 이익의 일부를 작품을 만든 저작자에게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중고 책을 거래할 때에는 작가에게 보상하는 장치가 없다. 이미 읽었지만 다른 사람이 읽기에 지장 없는 책이나, 샀지만 읽지 않아 새 책이나 마찬가지인 책을 다시 활용하는 순기능이 있기는 하다. 저작권제도는 작품을 만든 사람을 보호하려는 장치인 것을 생각하면 재활용에 큰 의미를 주기 어렵다.

저작권제도는 시대 상황에 맞게 바뀐다. 예전에 비디오테이프의 대여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여점이 많이 생기면서 대여권을 주었다. 저작물의 원본이니 복제물을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 샀다면 배포권은 저작자에게서 구매자에게 넘어가는 게 원칙이다. 그렇지만 상업 목적으로 나온 음반이나 비디오테이프는 영리를 목적으로 대여할 권리는 저작자에게 있다. 음반과 비디오테이프와 같이 책도 여기에 포함하는 게 좋겠다.

요즘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전화기 기능이 똑똑해져 전화기를 끼고 사는 시대 상황도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좋은 책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업 작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손꼽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문화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뛸 환경이 팍팍하다면 우리 문화 수준에 영향을 준다. 현대는 문화가 산업경쟁력을 만들어낸다. 한류 바람에서 확인되는 바다.

책에는 작가의 고뇌와 사상이 담겨있다. 작가가 밤잠을 설치면서 만든 책, 책을 사자. 한 번 팔린 책이 다시 중고서점에 나올 때는 거래된 책값 일부는 작가에게 저작권료도 돌아가게 하는 게 저작권제도의 취지에 맞을 것이다. 더욱 문화가 넘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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