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제주도에는 장마 전선 영향으로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내륙은 때 이른 더위로 대지가 타들어가고 있다. 내게는 일상이 된 아침운동 가기 전에 기상정보를 살펴보니 폭염이 계속된다는 소식이다. “서울, 경기 내륙, 충청도, 경북 내륙에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이날까지 내륙을 중심으로 낮 기온이 33도 내외로 오르면서 덥겠다”는 기상청 주말 날씨 예보를 접하면서 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앞으로 7~8월 두 달간은 고생해야겠구나 하는 더위 걱정이다.

며칠 전에도 폭염주의보가 발령됐고 올여름 가장 더웠다는 기상 보도가 났다. 하지만 한낮에만 반짝 더위일 뿐 아직까지 대지(大地)와 건물이 열기에 달궈지지 않아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한 편이다. 해가 떠오르기 전 이른 시간의 기온이 한낮과는 달라서 아침운동 하기에는 쾌적하다. 주말 아침 여느 날처럼 인근 초등학교로 운동하러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 순간 동편 상가 건물 사이로 막 비쳐나는 아침햇빛에 눈이 부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몇 발짝 걸으니 기분이 산뜻해지는데, 강렬한 햇빛과 함께 미풍을 맞고 있으려니 절로 입에서 노래가 나온다.

‘상쾌한 아침이다. 걸어서 가자. 너도 걷고 나도 걷고 걸어서 가자, 걸으면 건강하다 걸어서 가자…’ 제목조차 알 수 없는 노래를 그냥 부르지만 분명히 학창시절에나 불러봤던 그 노래가 느닷없이 튀어나왔으니 실은 나도 깜짝 놀랐다. 한때 라디오 전파를 타고 무수히 들었던 노래,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잊어진 채로 있었는데 갑자기 그 노래가 튀어나오다니 정말 묘한 기분이 든다. 학교 운동장을 걸으면서도 나는 그 노래를 몇 번이나 계속 불렀던 것이다.

‘…너도 걷고 나도 걷고 걸어서 가자. 걸으면 건강하다 걸어서 가자.…’ 여기까지는 쉽게 불렀다. 노래 속에 ‘동서남북 어디라도 걸어서 가자’라는 가사도 있었던 것 같은데 쉽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는 가사만 반복해서 노래 부르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이상했다. 오래 전에 불러보고 그 후로는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이 노래가 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그것은 잠에서 깨어나 아침운동을 나서는 순간 비쳐진 눈부실 정도로 강렬한 햇살을 보고서, 상쾌한 기분이 들어 깊은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 옛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묘한 기분 속에서 기억나는 가사만으로 반복해 노래 부르며 걷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멜로디가 주는 산뜻함도 있지만 노래가사에 걸으면서 건강을 다지는 즐거움도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침운동에 나서서 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어보면 누구라도 가사처럼 기분이 상쾌해지기 마련이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나는 조금 전에 불렀던 노래를 자꾸 불러보는데 끝 부분을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몇 번이나 반복해 불러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자료를 뒤져봤다. 그 노래의 제목이 ‘걸어서 가자’는 걷기 캠페인송이었다.

‘상쾌한 아침이다 걸어서 가자/ 너도 걷고 나도 걷고 걸어서 가자/ 걸으면 건강하다 걸어서 가자/ 상쾌한 아침이다 걸어서 가자// 유쾌한 기분이다 걸어서 가자/ 학교에도 일터에도 걸어서 가자/ 걸으면 건강하다 걸어서 가자/ 유쾌한 기분이다 걸어서 가자// 노을도 아름답다 걸어서 가자/ 동서남북 어디라도 걸어서 가자/ 걸으면 건강하다 걸어서 가자/ 노을도 아름답다 걸어서 가자’(3절 전체 가사) 

이 노래는 지금은 사라진 동아방송이 개국 1년을 맞이한 1964년, 만들어진 사상 첫 캠페인송이다. 그 당시 서울 시내버스 업체가 교통비 인상을 내걸고 전면 운휴에 들어가게 되자 지하철이 없던 시절이라 시민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버스업자의 횡포에 대항하고 시민의 건강 향상을 도모하자는 방송사 측의 착안으로 만들어진 ‘걸어서 가자’ 이 노래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탔으니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방방곡곡에서도 걷기 캠페인송으로서 큰 호응을 얻게 됐다.

관련 자료를 뒤지면서 알아낸 특이한 점은 ‘걸어서 가자’ 노래가 기획에서 방송에 이르기까지 불과 7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걷기 캠페인의 필요성을 절감한 동아방송이 아침 간부회의에서 ‘걸어서 가자’ 주제를 정했고, 전영우 아나운서실장이 3절로 된 노래가사를 그 자리에서 완성했다는 것이다. 버스 운휴 파동에서 비롯돼 국내 캠페인 방송의 효시가 된 이 노래는 엄청난 국민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걸으면 건강하다’는 점도 널리 홍보하게 된 것이다.

요즘 들어 많은 사람들은 건강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나름대로 맞는 건강법을 실행하고 있다. 동네공원을 산책하는 알뜰파가 있고, 고급 헬스클럽 회원권을 가진 부유층도 있다. 여러 운동 가운데서 돈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유산소 운동이 걷는 것이니 한 마디로 국민운동이다. 이젠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어서 가자’ 캠페인송은 상쾌한 아침을 선사해준 건강 지키기 노래였으니 당시를 떠올리면서 독자들에게 걷기 운동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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