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얼마 전에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운봉에서 인월로 가는 제2 구간은 람천을 따라가고, 람천 둑길 한 편에는 벚나무가 심겨 있습니다. 다른 편에는 최근에 새로 벚나무를 심었습니다. 둑길 양쪽에 벚나무를 심은 것이지요. 전국 어디에 가더라도 길가에는 거의 벚나무를 심었습니다. 왜 거의 모든 전국 길가에 벚나무를 심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4월이 되면 온 나라가 벚꽃 잔치에 빠져듭니다.

벚꽃은 일제가 우리나라에 본격 보급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벚꽃은 일본을 연상시킵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사진에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자주 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벚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라고 하고, 지금 벚나무는 제주도 왕벚나무에서 나온 종이라면서, 벚꽃이 애써 일본 것이 아니라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벚꽃에서 일본을 떠올립니다.

최근 소녀상 설치 문제로 일본과 감정의 골이 깊어져, 벚꽃을 바라보는 시민의 눈길도 따가워져서 그런지 제주도와 국립산림과학원은 토종 왕벚나무를 전국에 보급하기로 하고, 오는 2020년까지 한라산에 왕벚나무 보급기지를 대폭 넓히기로 했다는 기사도 보입니다.

작년 삼남길을 따라 걸을 때였습니다. 삼남길은 강진에서 서울까지 과거보러 가는 길을 재현한 것입니다. 삼남길 경기도 구간을 지날 때 여기저기 벚나무도 심겨 있습니다. 서호천길을 걷는데 무궁화가 심겨 있는 것을 봤습니다. 상당히 공을 들이며 가꾸는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식으로 지정됐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을 읊조립니다. 우리나라 꽃이라는 무궁화를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렵습니다. 무궁화는 크지 않더라도 높이가 3~4미터는 자란다고 하니 가로수로 심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상징이라는 무궁화는 찾기 힘든데, 일본을 상징하는 벚나무가 전국을 뒤덮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지요.

벚꽃은 한꺼번에 활짝 피는 맛이 있는지 모르지만 곧 꽃이 집니다. 꽃을 즐기는 시간이 짧습니다. 떨어진 꽃잎은 지저분합니다.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벚나무 열매는 버찌입니다. 버찌는 열매가 작고 맛도 별로여서 과실로서 가치는 없어 보입니다. 요즘 한창 버찌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떨어진 버찌는 바닥을 시꺼멓게 물들입니다. 가을에 은행나무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냄새를 풍기면서 바닥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벚꽃을 즐길 시간이 짧고, 열매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무줄기와 잎이 가로수로서 느티나무랑 견줄 때 특별한 장점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벚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겠지요. 저는 무궁화가 전국을 뒤덮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라면 숫자는 적더라도 자주 눈에 띄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린이에게,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인에게 저게 ‘우리나라 꽃’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요.

벚나무를 없애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온 나라에서 벚나무를 벗으로 삼을 이유는 없겠다는 뜻입니다. 벚나무가 차지한 자리를 나누어 무궁화를 심어 대한민국에서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알게 합시다. 또, 탐스러운 열매가 달리는 살구나무, 매화나무, 감나무도 심고, 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따 먹는 즐거움도 누리게 하면 좋겠습니다. 훨씬 넉넉하고 대한민국다울 것 같습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