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나서 미국이 조용할 날이 없다. 미국만이 아니다. 조심성 없이 마구 내지르는 그의 입이 ‘화(禍)’를 부른다. 대통령은 기업 경영과는 다른 것인가. 그야말로 ‘구화지문(口禍之門)’이다. ‘구화지문’을 좀 더 자세히 풀어 말하면 이렇다. 전당서(全唐書) 설시(舌詩)편에 실려 있는 글이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리요. 잘못 놀리는 입과 혀는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그에게 이슬람(Islam)과 중동은 종교인종적으로 호감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이것 역시 세계를 경영하는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임은 더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감정을 숨김없이 말로써뿐만이 아니라 행정명령으로써 드러내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주요 국가들이 미운 털이 박힌 카타르 왕국과 일제히 단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 아닌 것은 분명해보였다. 

공식적으로 알려지기로는 카타르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대척점에 있는 이란을 두둔하는 그들 국왕의 입장을 국영통신에 실었다는 것이 배경인 것으로 설명됐다. 그런데 그런 저런 설명이나 세간의 추측이 미처 일기도 전에 트럼프의 입이 먼저 열렸다. 힌트(hint)를 내뱉었다. 그는 본시 미주알고주알 사회적 소통망(SNS)에 공사(公私) 간의 일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올리는 못 말리는 버릇이 있다. 정말 이상한 버릇이다. 그는 거기에 그 단교조치를 ‘환영 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그 단교조치에 일조(一助)했음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자신이 중동 방문국에서 ‘이슬람 과격 세력에 돈을 지원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는데 모든 나라들이 그 주범으로 ‘카타르를 지목했었다’고 밝혔었다. 

아닌 게 아니라 카타르 왕족이 이라크에서 사냥을 하다 이슬람 과격세력 IS에 인질로 잡혀 10억 달러(1조원 이상)의 몸값을 주고 풀려났다는 보도가 뒤따랐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첩보망을 가진 정보 대국이다. 어느 나라도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 트럼프는 그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매일 그 같은 정보에 관해 보고를 받는다. 설마 트럼프가 카타르의 10억 달러 몸값 지불을 몰랐겠나. ‘이슬람 과격 세력에 돈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필시 그것의 ‘은유(隱喩)’였을 것이 틀림없다. 트럼프가 그런 정도로만 운을 띄워도 그들에게 관련 정보가 있었든 없었든 트럼프가 누구인데 그의 말을 허투루 취급하겠는가. 

물론 카타르와의 단교가 러시아가 중동국가들의 이간을 위해 카타르 통신에 심은 ‘가짜 뉴스(fake news)’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트럼프의 ‘힌트’에 의한 것인지, 평소 눈 밖에 나 쌓인 감정의 폭발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 그렇더라도 트럼프의 가벼운 입이 세상의 화제에 오른 것만은 틀림이 없으며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준 계기가 돼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카타르에는 중동 최대의 미군기지가 있다. 그런 입장에 카타르를 상대로 이루어진 중동국가들의 단교조치를 덜컥 ‘환영한다’ 했으니 이를 어찌 경솔하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치다가는 그의 경솔함은 미국에게는 물론 세계 전체에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급기야 그는 미연방수사국장 코미(Comey)를 해임한 일로 정치적으로 궁지에 빠져있다. 이 역시 가벼운 말과 처신 때문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코미는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와의 불법 내통(內通)여부에 대해 수사하다 전격 해직당했다. 코미는 의회 청문회에 선다. 만약 코미의 증언에서 트럼프가 그에게 수사 중단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그는 탄핵의 위기에 몰릴 수 있다. 뉴욕타임스와 CNN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매일 트럼프 때리기로 지면과 화면을 도배질을 하는 형편이다.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서 몰아내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주요 언론과 트럼프 사이에 악감정(惡感情)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가 애초 그에게 비판적이라 해서 멀쩡한 이들 매체들에 대해 가짜 뉴스를 양산한다고 연거푸 비난해왔었다. 지금도 그 같은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이것 역시 트럼프의 등장과 무관한 ‘오비이락’은 아니지만 요즘 미국에서 배울 것은 별 것이 없다. 그들은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도 리더십도 체면도 잃었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부르짖는 고립주의(isolationism)적인 정치 신념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쇠퇴를 결정적으로 가속화시키는 크나큰 실수가 될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세계적 위상과 그것으로부터 창출되는 국익은 고립주의로 지켜질 수가 없었다. 그들이 고립주의로 웅크린 것이 트럼프 때만은 아니지만 번번이 그 고립주의를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으로는 세계에 산재(散在)한 그들의 국익을 온전히 지켜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충고할 입장도 아니고 그들도 부인할지 모르지만 오늘 날 미국은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트럼프 치하의 그들은 오로지 언론과 대통령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소모적인 내홍(內訌)과 민주 공화 양당 체제에서의 출구 없는 정쟁(政爭)에 골몰하고 있는 세계에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의 실패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우리는 그들과 동맹이다. 미국만한 맹방이 어디 있는가. 혹여 어설프게 다른 어떤 쪽의 견인과 이간책에 이끌려 미국과 맺고 있는 전통적인 우의를 소홀히 한다면 과연 우리가 얻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어설픈 줄타기는 위험하다. 더구나 지금은 국내 정치 상황으로 벼랑에 선 트럼프가 예민하다. 곧 열릴 한미정상 회담에 더더욱 신경이 쓰이는 이유다. 솔직히 조마조마하다. 우리의 문재인 대통령처럼 그도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북의 핵과 미사일 문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여기서 그와 불화가 생기면 트럼프 역시도 힘들어지겠지만 우리는 더 힘들어진다. 트럼프가 입이 가볍고 처신에 실수가 많아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했든 말든 우리 입장에서 챙길 건 챙겨 두는 것이 최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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