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모처럼 기대감이 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02 한·일 월드컵과 같은 4강 신화의 기적까지 내심 바라보기도 했으나 뜬 구름이 걷히면서 한국 축구의 현실이 이내 드러나고 말았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선수권대회 4강 진출 이후 34년 만의 부푼 희망을 안고 출격한 U-20 축구대표팀이 8강 문턱에서 물러났다. 예선서 아프리카 복병 기니를 3-0으로 완파하고, 강호 아르헨티나마저 2-1로 제치며 16강행을 조기에 확정했던 한국은 예선 마지막 경기인 잉글랜드에서 0-1로 패배하며 불안감을 보였다. 

지난달 3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포르투갈과의 16강전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이었다. 지면 바로 탈락하는 노아웃 방식의 경기에서 한국에게 포르투갈은 사실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성인 축구에서 포르투갈은 지난해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현재 세계랭킹 4위에 올라있고, U-20 멤버들도 세계적인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스포르팅 리스본, 벤피카, 포르투 등 포르투갈 명문 프로팀에서 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선수들이 포르투갈을 상대로 먼저 3골을 허용하며 몰렸으나 결코 투지를 잃지 않고 맞서 1골을 만회해 영패를 모면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U-20은 성과를 내는 자리가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경험을 쌓는 자리다. 나는 우리 선수를 응원하고 싶다”며 위로했다.

포르투갈전을 보면서 축구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포르투갈 축구 시스템은 어린 선수를 키워서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등 빅리그에 내다파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1991년 남북단일팀이 8강에 진출했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FIFA U-20 월드컵 전신)에서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 핀토 등을 주축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피구 등은 이후 승승장구, 빅리그에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청소년 시절 스포르팅 리스본에 입단한 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거치며 화려한 명성을 쌓았다.

이에 반해 한국 축구는 사실 ‘우물안 개구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우, 백승호 두 선수가 일찍이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 선진 축구를 배우며 경험을 쌓고 있으나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국내 대학에서 돈을 제대로 받지 않고 아마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감독의 일방적인 통솔하에 팀 성적을 내는 데 급급하며, 창의성과 융통성 있는 개인 기량을 쌓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막혀있다.

모 대학에서 미드필더로 활동하는 한 축구 선수는 “사실 지금과 같은 축구시스템으로 포르투갈과 같은 유럽의 강호들을 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신태용 감독님이 포루투갈전에서 운이 잘 따르지 않아 졌다고 말하는데, 기본적으로 축구 생태계는 전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재기와 투지가 넘친 U-20 선수들이 평가전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큰 기대감을 가졌다. 개최국으로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고 청소년 선수 특유의 패기와 정신력을 발휘한다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심 바랬다. 하지만 냉엄한 현실에서 이러한 기대는 결코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결코 실망만 할 것은 아니다. 한국 축구는 과학화, 선진화에 눈을 뜨며 축구 강국과 활발한 인적 교류를 통해 어린 선수들부터 기본기를 잘 닦아나가면 밝은 미래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생각과 희망을 갖고 도전하는 자세를 잃지 않을 때 성숙된 축구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 포르투갈 선수들도 많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실패하면 할수록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 어린 선수들이 잘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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