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가족공원. ⓒ천지일보(뉴스천지)

용산가족공원서 봉은사 거쳐 서울숲까지 당일치기 순례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날로 따듯해지는 날씨.  파릇파릇 나무 잎사귀. 완연한 봄기운은 이제 막 여름을 향해 달려간다. 봄철 불청객 황사와 미세먼지도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어디론가 떠나기 딱 좋은 날씨다. 그래 떠나자. 문제는 시간과 돈이다. 여행 갈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겐 지하철이 있다. 가까이에 있고, 아주 저렴하다. 물론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 해당하는 말이다. 

◆친환경텃밭 눈길… 日강점기·6.25 역사 서린 ‘태극기공원’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을 타고 봄 여행을 떠났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용산가족공원. 지하철 4호선 이촌역 2번 출구로 나가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인도 옆으로 난 가로수와 풀이 푸른 옷을 갓 입은 듯하다.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아직은 햇볕이 뜨겁진 않지만, 선크림은 필수다. 입구에 들어서면 돌 화단의 울긋불긋 철쭉이 반긴다. 꽃내음이 진하다. 꽃들 사이로 벌들이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꿀을 빤다. 오전이라 그런지 고요하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운다.

공원 오른쪽 끝에는 친환경텃밭이 있다. 살균 살충제나 화학비료,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밭 입구 게시판엔 농사재배달력이 걸려 있다. 잎채소, 부추, 대파, 감자, 완두콩, 메주콩, 땅콩, 옥수수, 들깨, 고구마 등 24가지 작물의 씨뿌리기, 모종키우기, 본밭에 아주심기, 생육기, 수확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돼 있다. 씨앗심기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 그림도 옆에 있다. 시골에서 살아보지 않은 도시 자녀들에게 농사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교육자료가 될 듯하다. 

게시판 뒤로 가로 5m, 세로 1m가량 돼 보이는 작은 텃밭이 100개 이상 밀집해 있다. 저마다 배정된 주인이 있다. 상추, 고추, 파 같은 작물이 눈에 띄었다. 물뿌리개로 밭에 물을 주던 한 시민은 “취미로 상추를 심었다. 주말이면 가끔 나오는데, 잘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텃밭은 공원이 일반 시민에게 분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난 3월 분양했는데, 총 180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텃밭을 지나면 뛰어놀기 좋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여기에선 손모양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흡사 기왓장처럼 보이는 철판을 붙여 만든 것이라 마징가 제트 손을 연상시킨다. 오전 10시가 지나자 봄소풍을 온 유치원생들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 용산가족공원 태극기공원. ⓒ천지일보(뉴스천지)

용산가족공원은 지난 1992년 11월 조성됐다. 원래 주한미군사령부의 골프장으로 쓰이던 부지였다. 부대가 이동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미군이 있기 전엔 일본군 주둔지였기도 했다. 한국 근대사의 역사와 아픔이 서린 곳이다. 공원 한켠엔 이를 기념하기 위한 ‘태극기 공원’이 세워졌다. 가운데 바닥의 무궁화 형상을 높이 솟은 태극기들이 빙 둘러선 모양을 하고 있다. 한쪽에 세워진 안내판은 “현대사에 있어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해방 후에는 미군이 주둔해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못했던 땅이기에 우리 민족의 혼을 다시 살린다는 취지로 나라의 꽃인 무궁화 형상으로 조성했고,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 50봉과 무궁화를 식재해 애국심을 기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거렸다. 

▲ 봉은사. ⓒ천지일보(뉴스천지)

◆등나무꽃 향기 속 독경 소리 울리는 봉은사

다음 행선지로 찾은 곳은 봉은사. 9호선 봉은사역 1번 출구에서 내리면 바로 나온다.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철인 봉은사는 조계사와 더불어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다. 이곳을 찾은 불자들은 경내로 통하는 입구인 진여문에서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들어간다. 천정엔 분홍색, 초록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연등이 즐비하다. 진여문에서 법왕루로 이어지는 길 위로 빽빽하게 매달려 지붕을 이뤘다. 초파일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보라색 등나무 꽃이 주렁주렁 매달린 정자도 눈에 띄었다. 진한 향이 정자 주변에 진동했다. 

“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뜻을 알 수 없는 독경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봉은사 경내에 울려퍼진다. 대웅전과 마주한 법왕루에서 나는 소리. 안에는 빈자리 없이 불자들이 들어찼다. 스님들의 목탁과 독경 외는 소리가 빠른 템포로 제법 경쾌한 리듬을 탄다. 불자들도 열심히 따라 부른다. 봉은사 한가운데 있는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와 아미타불, 약사여래 부처를 모신 곳이다. 이곳 마당도 연등으로 뒤덮였다. 흙바닥으로 된 마당 위로 사찰 직원들이 쉴 새 없이 물을 뿌린다. 흙먼지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웅전 앞에 있는 3층석탑에선 향이 끝없이 피어오른다. 

▲ 봉은사 미륵대불. ⓒ천지일보(뉴스천지)

대웅전 왼쪽으로 가면 미륵대불이 나온다. 봉은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미륵대불은 1986년 영암큰스님이 발원하고, 1만명 이상의 불자들이 동참한 가운데 10년에 걸쳐 1996년 완공됐다. 높이 23m로 국내 최대 크기라고 한다. 뙤약볕 한가운데 서 있는 대불 아래 광장에 모인 불자들이 바닥에 방석을 깔고 불공을 드렸다. 

봉은사 내부 곳곳에선 등공양 접수가 한창이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대웅전에 걸리는 108업장소멸등은 108만원, 대등 100만원, 소원성취등 50만원이다. 법왕루에 들어가는 만사형통등은 20만원, 학업성취등은 20만원, 지장전에 걸리는 극락왕생등은 20만원이다. 미륵전의 운수대길등은 20만원, 대웅전이나 지장전 앞에 걸리는 마당등은 5만원으로 가장 저렴하다. 카드도 된다. 현금입출금기도 구비돼 있다. 봉은사결제고객에겐 2~5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이 제공된다는 광고도 붙어있다. 

등공양에 붙어 있는 이름이 재미있다. 극락왕생등에 20만원이라…. 극락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니. 100만원, 50만원, 20만원 돈을 내야 소원이 성취되고 만사가 형통하고 극락에 간다는 뜻일까. 만약 그렇게 안 된다면 환불은 해주는 건지 궁금하다. 공양을 하는 당사자는 돈을 내는 행위가 부처에게 불공을 드리는 정성의 한 표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복신앙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지우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 옛날 돈을 받고 죄를 사해준다는 면죄부 판매 행위는 중세 가톨릭교회 부패의 상징이었다.

▲ 서울숲. ⓒ천지일보(뉴스천지)

◆아이들 인기만점 서울숲 곤충식물원

봉은사를 뒤로 하고 마지막 여행지로 방문한 곳은 서울 성동구에 있는 서울숲이다. 분당선 서울역숲 3번 출구로 나오면 동식물을 체험할 수 있는 생태공원이자 복합문화공간인 서울숲이 펼쳐진다. 서울숲은 옛부터 말목장, 임금의 매사냥터과 군대사열장, 땔감, 양륙지 등이 있던 곳으로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이 조성됐다. 이후 서울경마장과 골프장이 조성됐다가 1989년부터 주민 여가활동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2005년 6월 18일 개원한 서울숲은 5개의 테마공원으로 구성됐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 중 하나는 곤충식물원이다. 평소 보기 어려운 열대 식물과 100여종의 다양한 나비와 곤충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유리벽으로 만들어졌고, 2층 구조로 된 곤충식물원은 테마 식물원, 표본 전시실, 나비생태관 등으로 이뤄졌다. 이구아나, 설가타육지거북, 발톱개구리 같은 이색 동물들도 만나볼 수 있다. 

▲ 서울숲 생태공원. ⓒ천지일보(뉴스천지)

또 다른 인기코스는 꽃사슴 등이 있는 생태숲이다. 40여 마리의 꽃사슴과 고라니가 방사된 생태숲은 동물들의 안정을 위해 오전 7시에서 오후 8시까지만 개방한다. 6, 7, 8월엔 오후 9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날 오후 생태숲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는 꽃사슴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다가가자 머리에 뿔난 숫사슴과 암사슴이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기도 했다. “따씀이다, 남자 따씀.” 아이들이 환호한다. 그러나 만질 수는 없다. 구제역 등 동물 감염병을 방지하기 위해 철조망으로 분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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