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14년여간은 한국스포츠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다. 한국스포츠는 당시 스포츠 선진국에 못지않은 뛰어난 경쟁력을 보이면서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애국심을 느끼게 하며 ‘코리안’이라는 정체감을 한껏 증폭시켜주었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한국스포츠가 놀라운 성적을 냈던 당시, 스포츠 기자로 현장을 지켰다.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맑고 푸른 전형적인 가을 날씨 속에 서울올림픽대회는 ‘화합·전진’의 기치 아래,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을 포함한 전 세계 160개국이 참가해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화려한 개막식을 가졌다. 한국은 서울올림픽대회에서 금 12개, 은 10개, 동 11개로 종합 4위를 획득해 올림픽 참가 사상 가장 좋은 결과를 냈다. 이 대회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고유문화와 우수한 경기 운영 역량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한국축구가 4강에 올라 5천만 국민이 ‘붉은 악마’로 하나가 되며 단군이래 최대의 경사를 즐겼다. 한국축구는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조련에 힘입어 폴란드를 상대로 사상 첫 월드컵 본선 무대 승리를 낚으며 이변을 연출하며 예선을 통과, 이탈리아,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전서 독일에 1-0, 3·4위전서 터키에 3-1로 각각 패하고도 국민들이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축구를 통해 행복감을 만끽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올림픽에서 한·일월드컵 사이에 걸친 1980~90년대와 2000년 초반 한국스포츠는 황금의 시대였다. 출전하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탁월한 성적을 올렸으며 남북탁구와 청소년축구 단일팀, 시드니올림픽 남북선수단 동시 입장 등 남북스포츠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한국스포츠의 화려한 전성기를 되돌아 본 것은 현재 한국스포츠가 놓인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스포츠는 수십년간 이어져 온 출산 저하에 따른 얇은 엘리트 선수층과 운동기피현상, 아마와 프로스포츠의 불균형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삶의 질, 국민 행복을 위한 스포츠’라는 새로운 가치를 표방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가 체육을 상대로 ‘국정농단’을 자행함으로 인해 탄핵, 파면을 당하게 되면서 체육의 중심이 크게 흔들린 모습이다. 지난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통합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출 것으로 기대했던 대한체육회는 박근혜 정부가 추락하면서 동력을 상당히 잃었다. 올 초 야구대표팀이 약체 이스라엘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예선전에서 중국에게 패배하는 등 불안한 행보를 보인 것은 한국 체육의 위기감이 드러난 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체육의 위기는 크게 보면 한국 사회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예전 한국 사회는 스포츠를 통해 국민적 연대감을 형성하며 이념, 세대, 지역 등으로 갈린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산업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며 국가경쟁력을 키웠다. 하지만 최순실씨와 일부 체육인들이 체육을 사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희생, 헌신, 노력’을 모토로 한 체육의 가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며 국민적 실망감을 안겨줬다. 최순실 사태는 선진화의 문턱을 넘어서려던 체육인들의 그간 노력을 일거에 수포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체육인들이 5월 9일 대통령선거에서 탄생할 새 대통령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반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현재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진영은 최근 대한체육회를 포함한 13개 체육단체가 주최한 2017 대한민국 체육인대회에 참석, 스포츠 생태계 복원과 학교체육에 근간을 둔 합리적 체육발전시스템 구축 등에 동참할 것을 확약했다. 

차기 정부에서 현재 위기에 직면한 한국 체육이 전 국민이 스스로 스포츠 행위자가 되는 생활체육의 기반아래 새로운 시대를 맞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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