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동성애는 저의 정체성입니다. 그건 찬반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성애를 반대하지 않듯이 동성애는 찬반을 나눌 것이 아닙니다. 사과 하십시오.” 지난 4월 25일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힌 한 후보의 국회 기자회견장에 지구지역행동 네트워크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 활동가 등 10여명이 후보에게 던진 강력한 항의와 요구의 말이다. 인간의 정체성, 그 존재 자체가 찬성과 반대로 이야기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인권침해는 이제 멈춰야 한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맞서 인권운동가들은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주장을 지속해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모든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적인 약속을 만들자는 아주 상식적인,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나이, 언어, 출신국가, 인종, 피부색,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가족형태 등을 이유로 행해지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자는 법이다. 또한 불합리한 차별을 겪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구제를 포함하는 기본법이다. 

10년 전부터 이 ‘아름다운 약속’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어왔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정부의 공약이었던 차별금지법이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법무부가 입법예고했었다. 그 당시에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반대로 인해 성적지향과 병력 등이 삭제됐고, 결국 법은 통과되지 못했다. 2010년의 시도에도 마찬가지로 이유로 법제정이 무산됐다. 17대, 18대, 19대 국회에서도 의원들의 연이은 발의가 있었지만 결국 제정되지 못했고, 법안을 발의했던 일부 의원들은 유권자들의 압력에 의해 스스로 법안을 철회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차별금지법에 대해 “나중에” “다음에”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차별로 인한 일상적인 폭력과 혐오를 묵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차별로 인해 거대한 이득을 얻고 있는지, 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소수자 집단은 낙인과 편견으로 일상생활에서 배제되어 슬픔과 분노, 무력감을 느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이러한 우리나라 상황에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청하고, 또 권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이 사회의 소수자들이 온 몸으로 차별과 혐오를 겪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고 배워왔다. 각 개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약속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성소수자의 권리가 주요 이슈가 된 것은 사실 매우 늦은 출발이지만 반가운 현상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오기에는 그동안 소수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해 오신 많은 분들의 열정과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이 일을 해나가야 할 때이다.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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