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자서전으로 인한 불똥이 대통령선거전에 옮겨 붙어 나라 안이 온통 시끄럽다. 하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2005년 3월 15일 저술한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나온 ‘돼지 흥분제 이야기’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2007년 참여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전 장관의 자서전 ‘빙하는 움직인다’에 나온 ‘참여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북한 의견을 묻고 기권했다’는 대목이다. 두 권의 자서전 내용으로 선거전이 발칵 뒤집혔고 상대 후보들의 거센 공세에 해당 후보들이 변명하기에 바쁘니 국민들에게도 큰 관심거리다.

먼저 홍 후보가 자서전에 쓴 ‘돼지 흥분제 이야기’는 이렇다. 홍준표 후보가 서울 홍릉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 1학년 때, 하숙집 동료였던 S대 상대 1학년생은 같은 대학 가정과 여대생을 지독하게 짝사랑했다. 어느 날 그 학생이 다니는 같은 과 남학생들이 가정과 여대생들과 인천 월미도로 단체 야유회를 가는데 이번 기회에 여학생을 자기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며 흥분제를 구해 달라 부탁했고, 하숙집 동료들은 궁리 끝에 흥분제를 구해 주었다. 야유회 당일 밤 12시가 다 돼서 돌아온 하숙 동료가 울고불고 난리를 쳤는데 흥분제가 엉터리라는 것이었다.

그 사연인즉, 야유회를 마친 후 하숙동료는 짝사랑 여학생과 생맥주집에 들렀고, 흥분제를 탄 맥주를 마시고 쓰러진 여학생을 여관까지 데리고 가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막상 옷을 벗기려하니 깨어나 할퀴고 물어뜯어 실패했다는 것인데, 동료들이 구해준 돼지 흥분제가 실제로 약효가 없다는 게 친구의 주장이다. (홍 후보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흥분제는 돼지 수컷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암퇘지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하숙집 친구가 여학생이 술에 취해 쓰러진 것을 흥분제 작용으로 인해 쓰러진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라고 글에서 적어놓았다.

홍 후보는 그의 자서전 122쪽 ‘돼지 흥분제 이야기’ 말미에서 ‘다시 돌아가면 절대 그런 일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고 적고 있다. 젊은 날의 옳지 못한 행동이 뒤늦게 들춰져 비판의 뭇매를 받고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며 사퇴 요구로 이어지자 홍 후보는 그 당시에 들은 이야기로 자신은 무관하다고 변명에 나섰다. 어쨌거나 홍 후보가 성범죄 모의를 단순 흥밋거리로 생각하고서는 자서전에 싣는 그 자체가 그릇된 성 인식으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또한 요즘처럼 북한의 계속되는 핵 개발로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는 시기에 ‘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을 담은 송민순 회고록 내용은 진실 여부가 중차대하다. 송 전 장관이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이 이뤄지던 당시 이 문제에 대해 송 전 장관, 문재인 전 실장(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참석한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찬반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자, “문 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를 통해 북한의 의중을 확인해보자’며 결론을 냈다”고 기술했다.

이 같은 내용과 관련해 문 후보는 적극 반론을 펴고 있다. 그 당시에 이미 정부 입장이 정해졌기 때문에 북한에 문의할 필요는 없었고, 정부 결정대로 이행했다 주장했고, 또 다시 송 전장관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쪽지를 공개하면서 자신의 자서전 내용이 맞다는 입장을 거듭 내세웠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타 정당에서 문 후보의 대북관(對北觀) 공격 빌미를 삼고 있는바, 많은 국민이 그 사실 여부에 대해 큰 관심을 표시하고 있는 지금이다.

이렇듯 자서전이 빌미가 돼 대선에서 진실 공방이 펼쳐지고 있지만 실상 자서전은 자신의 살아온 생애와 활동을 담은 논픽션으로 실화(實話)에 바탕을 둔다. 일부 내용이 다소 미화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초해 살아온 이야기나 업적 등에서 귀감이나 교훈을 줄 만한 내용들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특히 필부의 그럭저럭 삶의 사연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유명인사의 자서전은 적나라한 자기 내면의 성찰과 함께 공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까지 들어 있어 사회의 관심사가 큰데, 앞뒤를 재보면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리라 본다.

한때 성공한 사업가, 정치지도자, 명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자서전이 요즘에는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마친 사람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 자서전 쓰기’가 유행을 타고 있다. 어지간한 노인회관에도 자서전 교실이 있고, 쓰기 쉽도록 도와주는 자서전 소프트웨어도 개발돼 있으니 바야흐로 자서전 풍년시대를 맞고 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이제는 ‘사람은 죽어서 자서전을 남긴다’로 대체된 말에서도 알 수가 있다.

자서전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발자취인 만큼 진실이 담보된다. 이번 홍 후보와 송 전 장관의 자서전 내용을 두고 성범죄 모의와 진위 시비로 시끄러운 가운데, 특히 ‘빙하는 움직인다’ 책에서 진실은 하나뿐이니 송 전 장관과 문 후보 중 한 명은 거짓말이다. 참여정부의 ‘북한 의중 문의’ 건은 과거 일이지만 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니 그 진실이 반드시 가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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