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대중에 공개된 위작논란 미인도. ⓒ천지일보(뉴스천지)

국립현대미술관, 투명유리 안에 미인도 공개
천 화백 유족 측 “관장 등 추가 고소할 것”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실제 크기는 26x29㎝. A4 용지보다 조금 큰 크기다. 화관을 쓰고 있는 여인, 그리고 어깨 위에 앉은 나비. 투명유리 안에 전시된 ‘미인도’는 보란 듯이 뚜렷한 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특별전’을 통해 미인도를 19일 대중에게 공개했다. 1991년 위작논란이 불거진 이후 26년만이다. 하지만 고(故) 천경자 화백의 이름은 빠져있었다. 위작논란이 아직 진행 중이어서다. 작품 속 여인의 눈망울은 왠지 모르게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는 듯 보였다. 여인도 작가의 이름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미인도가 공개되자 유족 측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대상으로 추가 고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풀리지 않는 ‘미인도’의 위작논란. 그 시발점은 어디였을까.

◆김재규 소장 미인도, 애당초 위작이었나

미인도는 1979년 대구 보안사령부인 ‘태백공사’에서 일한 오모씨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에게 선물한 거였다. 이듬해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혐의로 사형 당했다. 그때 그의 재산은 모두 환수됐다. 그 과정에서 미인도는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 실제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수인계물품목록’에는 김재규가 소장하던 물품이 기록돼 있다. 그 안에는 ‘미인도 30만원’이라는 문구가 또렷이 적혀 있다.

어느 곳 하나 거치지 않고 바로 이관됐는데, 왜 위작논란이 휩싸였을까. 김재규에게 선물한 미인도가 애당초 위작이었던 걸까. 하지만 당대 권력자였던 김재규를 대상으로 위작을 선물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 않았을까. 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수인계물품목록’에는 김재규가 소장하던 물품이 기록돼 있다. 그 안에는 ‘미인도 30만원’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경자 화백 “내 것이 아니다” 주장

위작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91년 4월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에 미인도가 전시됐을 당시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그림 제작연도부터 소장경위 등을 추적해 진품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화랑협회 산하 감정위원회에 감정의뢰 한 결과도 ‘진품’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충격을 받은 천 화백은 “붓을 들기 두렵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1999년 동양화 위조범으로 검거된 권모씨는 미인도를 자신이 위작했다고 주장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부정해 논란이 됐다.

▲ 천경자 화백이 남긴 공증 확인서 (출처: 위작 미인도 사건 고소인 및 공동 변호인단)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 검찰 “진품” vs 프랑스 감정단 “위작”

2015년 10월 천 화백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동시에 미인도 위작논란도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천 화백 유족은 미인도 재감정을 요청했지만,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후 프랑스 뤼미에르 감정단은 “미인도와 천 화백의 다른 작품을 비교한 결과 진품일 확률은 0.0002%”라며 위작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검찰은 칠이나 밑그림 등 표현 기법이 천 화백 특유의 양식과 일치한다며 진품이라고 맞받아쳤다.

유족 측과 뤼미에르 감정단은 반발했고, 진위 여부에 대한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올해 2월 유족 측 변호인단은 천경자 화백이 생전에 자신의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한 자필 공증 확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 프랑스 뤼미에르 광학연구소 쟝 페니코 소장이 위작임을 밝히기 위해 긴급 내한했을 당시 기자회견 모습.ⓒ천지일보(뉴스천지)

◆‘미인도’ 작가명 없이 대중에 공개

국립현대미술관은 위작논란 속에서도 미인도를 소장품 특별전을 통해 19일 일반에 공개했다. 하지만 다른 작품과 달리 미인도만은 ‘천경자’라는 작가명이 없었다.

이에 대해 장엽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장은 “미인도를 전시하면서 저작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미술관 고문변호사인 박성재 변호사는 “저작권법상 저작인격권과 공표권과 성명표시권에 대해 유족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데 이를 고려했다”라며 “법적으로 여전히 다툼이 계속되고 있고 유족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작가를 표시하지 않았다.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인도가 공개되자 천경자 유족 측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추가 고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변호인단은 “법적절차 진행 중의 위작 미인도를 국립현대미술관이 대중에게 공개 전시하는 행위는 명백히 현행법상 새로운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개전시를 결정하고 지시한 관장을 비롯한 결재권자들과 실무자들 전원(국립현대미술관의 변호사를 포함), 또 천경자 화백의 진품인양 몰아가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저작권법위반 및 사자명예훼손으로 새로운 고소를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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