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미중 정상회담의 내용이 이제야 슬슬 토막토막 흘러나온다. 도널드 트럼프(D. Trump)와 시진핑은 최근 남부백악관(Southern White house)이라 불리는 트럼프의 개인별장 플로리다 팜비치 마라라고(Mar-a-lago)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었다. 회의는 기자회견이나 공동성명도 없이 끝나버렸다. 따라서 그 내용도 일반에게는 안개에 휩싸인 듯 모호했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입 저 입을 통해 내용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중에는 유독 SNS 소통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포함된다.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겨 공개한 회담 내용 한 토막은 이렇다. ‘북한은 말썽거리를 찾는 중이다. 만약 중국이 돕기로 한다면 정말 훌륭한 일이 될 것이지만 만약 돕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도움 없이도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도 썼다. ‘나는 중국 국가주석에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해주면 미국과의 통상협상이 그들을 위해 훨씬 더 좋게 될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고 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중국이 북한에 어느 나라보다 가장 효과적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미국은 그 중국에 통상 문제를 지렛대 삼아 압박하며 독자 행동에 나설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다만 중국이 나서주지 않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긴 했다. 이는 중국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미국은 중국이 항변할 수 없는 독자행동에 나설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독자 행동에 활용할 소위 풀 옵션(full options)은 선제타격, 테러지원국재지정, 중국기업과 기관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제재, 한국내 전술핵 배치, 미군의 첨단전력 전개 등이다. 하나 같이 중국에 무거운 부담이 가는 것들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미중 정상회담 전후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요로에서 나온 얘기는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는 것과 ‘북한의 도발에 더는 말로 대꾸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말들이었다. 그러니까 북한의 도발에 관한한 미국은 이제 행동으로 대처하는 일만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핵문제는 이렇게 ‘고(GO)냐 스톱(STOP)이냐’의 결정적이고 최후적인 기로에 서게 됐다. 

급기야 트럼프의 미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핵항모 칼빈슨호를 갑자기 한반도 해역으로 회항시킨 것이 그것이다. 거기다 칼빈슨호를 비롯한 적어도 항모 2척, 항모 전단을 구성하는 공격원잠과 이지스 구축함, 순양함, 호위함 등과 무인정찰기, F35스텔스 전투기 등의 최첨단 전략 자산들까지 한반도 주변에 근접 배치돼 있다. 가공할 전력들이다. 이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분명한 압박 및 경고임과 동시에 도발이 있을 때 즉시 동원될 것임을 과시하는 압도적인 힘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만약 북이 6차 원폭실험을 하거나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나서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필시 그들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이 될 수 있다. 목하 우리 주변의 상황이 이렇다.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다. 천하대란(天下大亂)이며 천하대란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다(Man is a wolf to man)’. 이 말의 원조(元祖)는 라틴의 격언 ‘호모 호미니 루푸스(Homo homini lupus)’다.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이 라틴 격언을 들먹여 인간의 야수성(野獸性)을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배경은 프로이트가 세계대전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하고 경험한 상상을 절(切)하는 인간의 야만성과 잔인성이다. 전쟁 중 다반사로 자행된 인간의 살육과 파괴, 겁탈 행위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경험들이 그로 하여금 인간을 이처럼 늑대로 표현하게 만들어 놓았다. 경험이 말해주거니와 선거(選擧)는 결코 인간의 선(善)한 심성이 발휘되는 신선놀음이 아니다. 선거는 인간의 가장 치열한 본능인 권력욕이 맞부딪쳐 불꽃을 튀기는 정치행사다. 이래서 선거는 흡사 프로이트가 경험한 야수성의 ‘전쟁’과 같다. 5.9 장미대선이 절정의 고비로 치달으며 후보들의 형세가 심하게 요동친다. 이에 열 받친 후보들이 서로 늑대처럼 으르렁거리고 상대를 물고 뜯는다. 눈에는 핏발이 섰다. 상대를 흠집 내는 ‘네거티브(negative)’ 전술에 올인(all in)하며 거기에 승부를 걸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천하대란의 상황에서 이렇게 혼탁하게 선거가 치러지는 것이 우리에게 이로울 수 없다. 선거가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1등으로 승리하는 것만이 의미를 갖는 승자 독식(winner-take-all)의 선거 시스템에서 ‘네거티브’는 불가피한 측면이기는 하다. 물론 우리 선거의 고질적인 풍토이기도 하다. 다 이긴 선거를 그것 한 방으로 진 억울한 사례가 과거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네거티브’에 매달리는 주원인은 상대를 압도하고 국민을 감동시킬 집권 프레임(frame)이나 정책 대안과 같은 ‘정치적 콘텐츠(political contents)’의 부재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정말이지 ‘정치적 콘텐츠’를 충실히 강구해 자랑스럽게 국민 앞에 펼쳐 보일 수만 있다면 굳이 자기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인 ‘네거티브’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위력의 ‘네거티브’라도 국민과 시대가 부르는 ‘정치적 콘텐츠’의 위력을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다. 그는 이민의 쇄도와 경제의 세계화(globalization)가 도리어 자국내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국제개입주의(interventionalism)가 국력을 소모하는 현실에 신물이 난 미국 유권자들을 향해 ‘미국제일주의(America First)’를 부르짖어 성공했다. 인기영합주의의 색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집권 프레임으로 그는 정치 아웃사이더요 초심자였기에 당한 숱한 ‘네거티브’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처럼 국민이 원하는 시의적절한 ‘콘텐츠’가 아니라 ‘네거티브’로 선거의 승부를 보려는 것은 ‘콘텐츠’ 부재가 필연적으로 유발하는 정치적 헛발질이거나 일종의 선거 현장에서의 정치적 방황이라고 볼 수 있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우리의 5.9 장미대선은 그런 선거가 안 되도록 해야 한다. 왜냐. 이 선거가 후보들로부터 천하대란을 뚫고 나갈 해법이 제시되는 선거가 돼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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