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인지과학으로 유명한 레이코프(G. Lakoff)는 미국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정치담론을 분석하면서 그 키워드로 ‘도덕성’ 문제를 전면에 제시했다. 그는 도덕성 기저에는 ‘가정’이 있으며 거기에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부모’라는 서로 다른 가치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국가정책에서의 마약과 동성애 문제 그리고 전쟁 문제 등의 정책적 비전도 결국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시작된 도덕 시스템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흥미 있는 분석이지만 레이코프가 말하는 더 깊은 뜻은 도덕적 가치를 정치에 투입시켜 볼 때 우리는 좀 더 진보주의적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더 진화된 사회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틀린 이념, 실종된 도덕성

레이코프의 논리는 미국의 선거정치를 분석하면서 도출한 것이다. 한국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우선 한국정치에서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틀을 규정하는 것부터 상식과 이론으로부터 뒤틀려 있다. 보수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많으나 보수주의의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를 외치지만 그 실상을 보면 억지와 궤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나마 정치적으로는 정의당이 진보에 가까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치에서의 도덕성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19대 대선 레이스가 숨 가쁘게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실상 ‘양강구도’로 압축되면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에 대한 검증도 본격화되고 있다. 물론 리더십 문제도 좋고 또 정책적 차별성을 따지는 것도 좋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도덕성’ 문제이다. 사람이 좋다고 해서 도덕성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도덕성은 개인적 도덕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도덕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도덕성 문제는 제대로 짚어 보지를 못했다. 그럴만한 정치적 수준도 안 됐을 뿐더러 정치환경도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다. 대부분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리는 ‘극단적 진영논리’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도덕성은커녕 정책대결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오직 ‘구도(프레임)’가 대세를 가르는 기준이 돼버렸다. 패권적 기득권세력이 구축한 구도 싸움에 유권자가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가 ‘집단적 편가르기’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진영논리가 상당부분 붕괴되고 있다. 여야 대결도,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결로도 볼 수 없다. 지역 몰표 현상도 과거와는 다를 전망이다. 미미하지만 정책대결과 비전대결, 인물대결로 가고 있다. 뒤틀린 이념대결의 구태를 걷어내고 이번만큼은 정책과 비전, 인물을 관통하는 도덕성 문제도 제대로 짚었으면 한다. 과연 어느 후보가 개인적으로, 그리도 정치적으로 도덕성의 우위를 갖고 있는가. 이번 대선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되길 소망해 본다. 한국정치가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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