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스포츠 기사를 보다보면 ‘언더독’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대개는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여서 경기에서 질 것 같은 선수나 팀에게 붙인다. 이 표현에는 내심 경쟁에서 밀리는 쪽이 이기기를 바라는 기대치가 숨어있다. 투견에서 밑에 깔린 개, 즉 싸움에 진 개를 부른 데서 유래된 말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역경을 이겨내는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이에 반대되는 말은 ‘오버독(overdog)’ ‘탑 독(top dog)’으로 불린다.

‘언더독 노스캘로라이나대 농구팀’. 전통의 미국대학농구팀 노스캘로라이나대 농구팀이 지난 4일 ‘3월의 광란’ 미국 대학농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곤자가대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자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의 스포츠면에 올랐던 표현이다. 1980년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명장 딘 스미스 감독을 배출했으며 전미대학선수권대회를 올해 대회 포함해 6번이나 차지한 명문 농구팀 노스캘로라이나대를 언더독으로 지칭한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해 노스캘로라이나대는 이 대회 결승에서 빌라노바대에게 경기종료직전 3점슛 버저비터를 허용해 77-74로 패해 준우승에 머무르자 선수와 감독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승리를 확신했던 선배 마이클 조던도 큰 실망감을 보였고, 농구광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아쉬워했다.

지난 1년 노스캘로라이나대는 인고와 역경의 시간을 보냈다. “빌라노바와의 결승전 패배를 결코 잊을 수 없다”며 비장한 각오를 세우고 선수들은 개인 기량과 팀웍을 철저히 쌓았다. 언론들이 노스캘로라이나대를 언더독으로 지목했던 것은 올해 대회에서 우승의 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뉴욕타임스 농구기사는 성서이야기 ‘다윗과 골리앗’을 비유해 노스캘로라이나대를 다윗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때마침 국내 스포츠에서도 프로배구에서 ‘언더독의 반란’이 일어났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3일 V리그 챔피언결정 5차전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대한항공을 물리치고 10년 만에 챔피언에 올랐다. 현대캐피탈은 정규리그에서 대한항공에 우승을 내준 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2차전에서 극적인 역전드라마를 연출했으며, 5차전에서도 역전승을 거두는 저력을 보였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4월 세터 출신인 최태웅 감독 부임 이후 토종 한국선수들을 중심으로 빠른 배구로 팀 전력 변화를 꾀해 정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베스트셀러 ‘다윗과 골리앗,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에서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약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두는 이유를 분석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성서이야기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서 약점을 커버하고 강점을 강화하는 전략적인 마인드로 승부에 나서면 이길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지는 대선경쟁에서도 ‘언더독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지지도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그 뒤를 무섭게 쫓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이미 고난과 시련을 맛 본 언더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5년 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쓰라린 아픔을 겪고 와신상담, 재기의 꿈을 키웠다. 안철수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으며 문재인 후보에게도 대선경쟁에서 후보 자리를 내준 바 있다.

오랜 시간 많은 성장통을 겪은 이들에게 동정과 지지를 보내는 선거판세가 강한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에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예측불허이다.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는 그간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많은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 놓고 있는데, 국민들에게 누가 진정성을 더 보여주는가가 관건이다. 

언더독이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스포츠 스토리에 못지않게 이번 대선경쟁은 언더독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5월 9일 웃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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