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후한(後漢)의 광무제가 고난의 시절을 함께하며 의리와 지조를 보인 왕패(王覇)에게 했다는 질풍경초(疾風勁草)의 얘기가 다시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후한을 세우던 당시의 정국에서 광무제 유수(劉秀)도 온갖 인간 군상들의 궤변과 추태 그리고 적나라한 배신과 음모의 현실을 생생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말 그대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니 그들의 뿌리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 격변기를 맞을 때 비로소 여러 인간들의 감춰졌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탄핵정국과 적폐청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은 그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며 동시에 역사적이었다. 절제된 시민의식과 하나의 목소리로 촛불을 든 거대한 함성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할 ‘시대의 명품’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아니 세계사적으로도 평화집회의 신기원을 이뤄낸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뿌듯한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성과라 할 것이다.

그러나 질풍경초의 교훈이 그러하듯이 탄핵정국은 동시에 청산해야 할 적폐가 무엇인지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일개 장사꾼보다 추한 일부 대기업의 행태는 반드시 청산돼야 할 시대적 과제가 됐다. 뻔뻔한 거짓말과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언행은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엄청난 비리를 보고서도 침묵하거나 아예 한 패가 돼버리는 일부 고위 인사들의 행태도 이대로 둬선 안 된다. 국민의 피눈물을 짜내고 나라를 좀먹게 하는 원흉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적폐들을 이번 기회에 말끔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다행이도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뿐이 아니다. 탄핵정국에서 온갖 궤변과 언동으로 국민을 분노케 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그리고 변호사들의 언행도 철저하게 따져서 그들의 적폐를 기록하고 책임을 물을 것은 물어야 한다. 역사의 고비마다 ‘정의의 길’과 ‘양심의 소리’를 메치는 무리들이 있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때도 항일독립운동을 음해하고 짓밟은 무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극의 씨앗’이 돼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적폐청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광화문광장의 함성이 아니겠는가.

다양한 언론을 통해 비평을 하는 필자의 시선이 ‘질풍경초’에 끌린 것은 필자 또한 탄핵정국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실체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바람이 고요할 때는 마치 정의롭고 고매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질풍이 몰아치자 그들의 실체와 뿌리는 금세 드러났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온갖 궤변과 기회주의적 언행은 실소를 자아낼 정도였다. 이제 한 시대가 끝나고 있다. 질풍경초의 그 단단한 뿌리가 새로운 역사의 중심이 되길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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