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신파가 아닌 예술영화이다. 돈과 상업성보다 인간이 현실에 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하고 직면한 상황과 인간 고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홍상수 감독은 이번 영화를 100%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영희(김민희)와 상원(문성근)이 주고받는 표정과 대화는 후회와 설렘, 사랑의 정당성 등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며 서로에게 잔잔한 애정을 드러낸다.

유부남 영화감독을 사랑하는 배우 영희가 독일 함부르크와 강릉을 오가며 주변 인물들을 도화지에 담고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카메라워크는 오로지 영희의 표정에만 주목한다. 홍상수 특유의 전술인 등장인물들이 술자리를 통해 가슴에 묻은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은 영화 ‘생활의 발견’이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나 다를 게 없다.

이 영화 역시 홍상수 특유의 연출기법인 일상관계에서 소소하게 발생할 수 있는 남녀관계의 갈등을 유부남 영화감독과 유명배우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표현했다. 영화 후미에서 만난 배우 영희와 감독 상원은 술자리에서 현실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진행됐던 그들의 사랑에 대해 자책도 하고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특히 유부남 감독 상원은 가족을 버리고 미혼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그때부터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정상이 아니다. 괴물이 되는 것 같다. 매일매일 후회하고 산다.”

영화 속 상원과 영희의 관계는 마침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을 묘사했다. 후회되는 건 맞지만 지금 너무 달콤해 그 후회에 대한 자각조차도 생각할 틈이 없다는 식으로 들린다. 술에 잔뜩 취한 영희(김민희)는 선배 천우(권해효)와 명수(정재영)를 만난 술자리에서 자신의 사랑이 진실 되고 정당성이 있다고 외쳐댄다. “사랑을 못하니까 다들 삶에 집착하는 거잖아요. 그거라도 얻으려고. 다 사랑할 자격 없어요. 이해하지도 못하면 입 좀 조용히 하세요”라고 소리친다.

이에 응원이라도 하듯, 영희의 지인들은 “지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 해대며 불륜이라고 난리다. 가만히 좀 놔두지. 끝까지 지켜주겠다”며 영희를 두둔한다. 현실에 처한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의 상황을 대변이라도 하듯, 영화 속 영희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다양한 언어로 현재 처한 심경을 표현한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흑과 백으로 나뉠 듯하다.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황을 자연스러운 미장센을 통해 꾸미지 않고 인공적이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잘 담아냈다는 평가가 있을 것이며, 다른 한 가지는 자신들의 옳지 못한 이야기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에게 정당성을 설파하고 방어하는 서사일 수 있다.

배우로서 김민희라는 존재는 안타깝기만 하다. 더 많은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고 차가운 고립된 이미지와 더불어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매혹적인 30대 팜므파탈로 더 큰 성장세를 이어가는 순간이었다. 홍상수 감독도 그런 김민희에게 제한을 준 건 아닌지 고뇌하는 모습이 영화에도 역력해 보인다.

영화 속 주변인은 대사에서 영희에게 “매력적이다. 왜 작품을 하지 않냐”며 안타까워한다. 억지로 꾸미거나 덧입힌 이미지가 아닌 자연인 김민희의 모습을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 속에서 더 갈망하고 있다.

“아, 그렇구나” 이런 대화의 유형은 보통 상대방에 대한 긍정의 의미도 있지만, 무심히 아무 생각 없이 텅 빈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영희는 “아, 그렇구나”를 연발하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분노와 울분을 토해낸다. 그의 영혼은 여전히 주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쓸쓸해 보인다. 대중과의 소통을 간과한 채 현재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느 순간 격정을 내려놓고 관객과 소통하고 더 발전된 김민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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