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려대장간마을 유적전시관에 전시돼 있는 2007년 발굴 당시 아차산 보루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475년 백제 친 후 한강유역 차지
일대 지키려고 아차산 보루 지어

남진정책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
적 움직임 감지하는 최적의 장소

보루서 ‘토기·철기류’ 등 유물
유적전시관에 350여점 유물 전시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475년 한성백제를 멸망시킨 고구려. 이들은 한성백제가 있던 한강유역을 지키기 위해 인근의 아차산을 요충지로 삼았다.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그야말로 최고의 장소였다.

교통로와 주변의 평야지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전쟁 시 적의 접근과 움직임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 고구려는 551년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에 의해 한강유역을 상실하기까지 이곳에 삶의 흔적을 남겼다.

▲ 보루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들 ⓒ천지일보(뉴스천지)

보루서 출토된 유물 전시

이 같은 고구려의 흔적을 알려주는 곳이 아차산 아래에 있는 ‘고구려대장간마을’이다. 18일 찾은 경기도 구리시 고구려대장간마을은 고구려 유적 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곳이다. 이곳은 아차산 유적전시관과 야외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유적전시관은 아차산 ‘보루’에서 출토된 토기류, 철기류와 자료 등 350여점의 고구려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보루란 적을 막거나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주로 산꼭대기에 만들어진 군사시설이다. 고구려는 한강유역에 20여개의 보루를 만들어 남진정책의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구체적으로 아차산에는 구의동보루, 아차산보루, 시루봉보루, 망우산보루 등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고구려는 왜 남하하게 됐고 아차산을 전초기지로 삼았던 걸까. 건국 초기 고구려는 중국의 요동, 요서지방과 부여 지방으로의 영토 확장에 주력했다. 이후 4세기 초반 황해도 일원의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한 뒤 5세기 장수왕 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남하를 시작했다.

▲ 고구려대장간마을 유적전시관에서 아차산 4보루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천지일보(뉴스천지)

특히 장수왕은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키고 고구려는 한강 이남으로 진출하게 된다. 삼국시대 한강유역은 백제와 신라에게 중국과 교류할 수 있는 교통로로서 매우 중요했다.

4세기 중반 이후부터 남진정책을 펼쳤던 고구려에게도 한강 남쪽을 공략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런 고구려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이기게 되고, 한강유역은 고구려의 영역이 됐다. 이후 551년까지 76년간 고구려의 흔적이 아차산에 남게 됐다.

구리시 신윤아 문화관광해설사는 “장수왕이 475년에 백제 개로왕 죽이고 한강을 차지하면서, 한강을 지키기 위해서 아차산 위에 올라가 보루를 지었다. 그래서 여기서 많은 유물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최초 학술 발굴 조사된 아차산 ‘4보루’

주목할 곳은 아차산 ‘4보루’다. 이곳은 남한 내 고구려시대 보루로서는 최초로 학술발굴 조사된 곳이다. 성벽 둘레 약 249m, 내부면적 약 2256㎡의 크기로 성벽과 성벽 내 생활 터로 구성돼 있다. 이곳은 남하하는 고구려군의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기지였고 한강으로 북상하는 적군을 방어하는 기능을 했다.

▲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 고구려 역사공부하는 아이들 ⓒ천지일보(뉴스천지)

장타원형의 성벽에는 적의 동태를 감시하면서 방어할 수 있는 시설인 치 4개와 출입구로 추정되는 이중구조의 치 1개가 확인됐다.

특히 성벽 내부에서는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 군사들의 생활을 위한 건물지가 학인됐다. 몸통긴항아리와 시루, 접시 같은 실용적인 토기와 투구, 말재갑, 등자, 삽날, 낫, 화살촉과 같은 철제 마구류와 무기류, 농기류 등도 출토됐다.

◆간이대장간도 발견… 철제무기 생산·수리해

당시 고구려가 철제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아차산 4보루에 ‘대장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 문화관광해설사는 “이곳에서 간이대장간 시설이 발견됐다. 전쟁 시 필요한 철제 무기를 만들거나 수리할 때 대장간을 이용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고구려는 대장장이를 신이라 할 정도로 우대해 줬다”라며 “최고의 두뇌집단이 모인 장소가 대장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보루의 대장간에서 이름을 따서 이곳을 ‘고구려대장간마을’이라고 지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고구려는 일찍이 청도제 무기를 철제무기로 대체해 사용하면서 전쟁을 통해 지역통합을 이뤄다. 또 지배 권력을 강화해 고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 고구려대장간마을 야외전시관ⓒ천지일보(뉴스천지)

아울러 고구려대장간마을은 유적전시관 외에 야외전시장도 있었다. 이곳은 고구려 벽화를 토대로 상상을 더해 만든 것으로, 고구려의 발달한 철기문화를 보여주고자 한 공간이다. 직경7m의 물레가 있는 대장간과 집들을 만들어 놨다.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태왕사신기 촬영장으로 이용됐으며, 이후 KBS 드라마 ‘바람의 나라’ ‘쾌도 홍길동’과 SBS 드라마 ‘자명고’ 등이 촬영됐다. 사전제작된 K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도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 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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