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알려진 반체제작가 반디선생의 고발소설집의 번역본이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한국에서 새롭게 개정판이 다산북스라는 출판사에 의해 출간됐을 때, 당시 수많은 언론 앞에서 소감의 이야기를 나눈 것이 문득 떠오른다.

“이런 자리에 선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쁘기도 하고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반디선생의 바램처럼 고발소설집이 전 세계 시민들 속에서 사랑받는 자체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할 일이지만,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알려짐으로써 그분에게는 점점 위험이 다가온다는 것에는 제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더욱 강한 책임감으로 묵묵히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조금은 비장한 각오로 소감을 밝혔었다.

우리는 흔히들 북한인권을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화두로 삼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강제북송, 노동착취, 꽃제비 등이다. 

물론 말로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단어들이고 인권유린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반디선생의 고발 소설집에는 이런 단어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간간히 그런 단어들이 보이지만 핵심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노동자, 간부집 자녀, 국기훈장, 보위부장, 1호 행사, 여행증 등의 일상생활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북한이라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담담히 보여주는 북한주민의 일상생활이 공포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북한이라는 사회전체가 주민들에게 일상생활로써 엄습하는 전체주의 노예사회의 공포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정치범수용소의 비참한 내부 실상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주민의 생활 속에 공기처럼 퍼져 억누르고 있는 노예제도라는 쇠사슬은 실로 가공할 공포로 주민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고발소설집의 첫 번째 장르인 ‘탈북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149호!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도장도 그저 도장이 아니라 목장에서 가축들의 잔등에 지워지지 않게 불에 달구어 찍어대는 쇠도장이었다. 옛날엔 노예들에게도 찍었다던 그런 무서운 철인이 지금 민혁 아버지와 그의 삼촌에겐 물론, 여리고 여린 민혁의 여린 잔등에까지 깊숙이 찍혀져 있는 것이었다.’

‘무대’라는 장르에서는 지역보위부장을 아버지로 둔 아들이 자신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는 아버지에게 총을 쏘라고 항변하며 다음과 같이 울부짖는다.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구요. 얼마나 처참해요, 지금 저 조의장에선 벌써 석달째나 배급을 못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예?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들로 만들어 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연극무대란 막이 꼭 내려지기 마련이라는 걸 아버지는 아셔야 합니다…’

아프고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도 항상 행복의 웃음소리만 나오게 만들어진 북한이라는 연극무대에서, 반드시 막이 내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세력들이 어디 북한에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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