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쌓은 성벽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상당산성’. 한국 산의 아름다운 지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충북의 대표 산성 ‘상당산성’을 가다]

원형 잘 남은 조선 중후기 석성
백제시대부터 있던 토성 개축
남한·행주산성과 같은 ‘포곡식’
산성 안, 현재도 주민들 거주해

남문→서문→동문으로 길 나
남암문서 청주시내 훤히 보여
‘찰칵’ 풍경 담는 소리 이어져
은은한 절경에 마음까지 심취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흰 눈꽃 왕국으로 변한 청주 ‘상당산성’을 본 적 있는가. 찬바람이 고개를 넘을 때마다 흩날리는 눈꽃 송이는 보석처럼 반짝였다. 사계절 모두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지만, 순백 옷을 입은 겨울 경관은 특히 빼어났다. 책이나 TV를 통해 보던 상당산성. 왜 이제야 이곳을 찾았을까.

◆조선 중후기 석성인 상당산성

지난달 21일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해 1시간 반 후 도착한 청주터미널. 이곳에서 산성행 시내버스를 타고 약 1시간가량 들어가니 상당산성을 만날 수 있었다. 맑은 고을 ‘청주(淸州)’에 자리 잡은 상당산성은 전날 내린 눈 덕분에 흰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마치 꼭꼭 숨겨둔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사적 제212호인 상당산성은 원형이 잘 남아있는 조선 중후기 대표적인 석성이다. 삼국 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삼국사기)과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기록 등이 남아 있다.

▲ 산행의 출발점인 남문 ⓒ천지일보(뉴스천지)

이곳은 백제시대부터 있던 토성으로, 1716년(숙종 42년) 석성으로 개축했다. 산성 둘레는 4.2㎞로, 남·동·서의 세 문이 있다. 암문(비밀문) 2개와 산성의 지휘관이 거처하던 관사도 있다. 또 산성 안에는 저수지와 집들도 있다. 이곳이 ‘포곡식 산성’이라는 증거다.

산성은 성벽 구조에 따라 ‘테뫼식·포곡식·복합식’ 산성 등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산성 대부분은 포곡식이다. 이는 테뫼식보다는 큰 규모로, 성벽이 골짜기를 싸고 있는 형태다. 성안에는 물이 풍부하며 활동 공간이 넓고, 외부의 노출도 방지해준다. 남한산성, 행주산성도 대표적인 포곡식 산성이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눈 쌓인 산성, 캔버스 속 그림 같아

산행 출발점은 남문 앞 광장이다. 코스는 남문-서문-동문으로 이어진다. 웅장한 성문 아래의 잔디밭에는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느냐 한창이었다.

남문 왼쪽으로 성벽 길을 따라 올랐다. 조금 경사졌지만, 산성 위쪽 풍경이 더 궁금해졌다. 발걸음도 왠지 가볍다. 성벽 길 안쪽에 있는 소나무들은 눈꽃이 만개했다. 나뭇잎을 ‘톡톡’ 건드리니 눈이 설탕처럼 ‘스르르’ 흘러내렸다.

그렇게 걷다가 몸을 뒤로 휙 돌렸는데, 캔버스에 그려놓은 듯한 은은한 분위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보이는 눈 쌓인 작은 산들은 겨울 낭만을 듬뿍 전해줬다.

▲ 청주 상당산성 남암문은 일종의 비밀문이다. 상당산성에는 두 개의 암문이 있는데, 성벽의 바깥 산 아래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만들었다. 사람과 가축이 암문으로 드나들었고, 식량을 몰래 들여오기도 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분 정도 올랐을까. ‘남암문’에 도착했다. 순간 “우와~”하고 입이 떡 벌어졌다. 흰 눈 쌓인 청주 시내가 훤하게 들어와서다. 이 경치가 있기에 상당산성이 꾸준히 사랑받나 보다. ‘찰칵찰칵’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표지판 하나가 있었다. 남암문에 대한 글이 적혀 있었다. ‘암문’은 일종의 비밀문이다. 상당산성에는 두 개의 암문이 있는데, 성벽의 바깥 산 아래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만들었다. 사람과 가축이 암문으로 드나들었고, 식량을 몰래 들여오기도 했다. 적군 몰래 아군을 내보내 성 밖과 연락도 했다. 암문이 적에게 알려지는 위급 사태에 대비해 안쪽에는 돌과 흙을 쌓아 놓았다. 급히 메워 성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 남암문에서 청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눈쌓인 청주 시내는 한폭의 그림같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 아름다운 지형 가까이서 느껴

남안문부터는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 쌓은 성벽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시야도 확 트인다. 한국 산의 아름다운 지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걷는 걸 좋아하고,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추천하는 길이다. 연인과 좋은 추억도 쌓을 수 있다.

성벽을 감상하며 30분쯤 걷자 서쪽 정문인 ‘미호문(弭虎門)’이 보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땅 모양이 호랑이가 뛰기 전 움츠린 모양으로 호랑이가 떠나면 땅 기운이 다하므로 호랑이의 목에 해당하는 곳에 성문을 세우고 미호문이라고 했다. 서문은 1978년 복원 후 지반침하현상으로 변형이 일어나 2015년 해체 후 다시 복원했다.

조금 더 가니 ‘포루터’가 나왔다. 포루는 성벽 안쪽에서 밖을 향해 화포를 발사하기 위해 만든 군사시설이다. 건물을 지어 만든 집 모양을 ‘포루’라고 하고, 성벽에 포혈을 만들고 화포를 배치한 것을 포대라고 한다. 상당산성에는 15곳에 포루를 만들었는데, 평균 240m 간격으로 하나씩 뒀다고 한다.

▲ 서쪽 정문인 ‘미호문(弭虎門)’.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땅 모양이 호랑이가 뛰기 전 움츠린 모양으로 호랑이가 떠나면 땅 기운이 다하므로 호랑이의 목에 해당하는 곳에 성문을 세우고 미호문이라고 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동문 밖 온정 가득한 ‘무인 찻집’

이제 ‘동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행의 끝이 다가온 것. 그런데 동문 안쪽에 ‘무인 찻집(동문 밖 200m 내 위치)’ 안내 글이 하나 있었다. 글을 따라가니 비닐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여니, 따뜻한 온기가 안에서 새어 나왔다.

“추운데 얼른 들어와요.” 이곳의 주인장 김기대씨는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겨줬다.

비닐하우스 안 정 가운데에는 난로가 하나 있었다. 그 위 노란 주전자에는 ‘둥굴레차’가 담겨있었다. 오가는 이들이 추위를 녹일 수 있도록 마련한 주인장의 온정이었다. 기자는 눈길을 밟느냐 꽁꽁 언 발을 난로에 대고 녹였다. 순간 어릴 적 살던 시골집의 향수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무인찻집을 시작하셨어요?” 기자가 김씨에게 물었다.

▲ 동문 밖 무인찻집에는 주인장 김기대씨가 오가는 이를 위해 마련한 따뜻한 둥굴레차가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직장생활하다가 지금은 농사짓고 있어요. (상당산성을) 지나가다가 이곳을 찾는 사람이 계속 늘어났어요. 차를 직접 타주지 못해서 한 잔씩 편히 마시고 가라고 무인 찻집을 시작하게 됐죠.” 방문객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따뜻했다. 그래서일까. 다음번에 또다시 상당산성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인찻집에서 나와 다시 마지막 코스로 향했다. 최종 목적지인 ‘동장대’. 이곳은 산성의 지휘관이 있던 곳이다. 동장대에서 바라보니 산성 마을과 저수지가 한눈에 보였다. 이 산성을 실제 사용할 때도 지금처럼 아름다웠겠지. 긴 시간 자연 그대로 보존되는 상당산성. 다가오는 계절, ‘봄옷’을 입은 산성의 모습도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산성의 지휘관이 있던 동장대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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