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지난해 3월 김정은이 직접 건설 계획을 밝힌 평양시 려명거리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의 무용론을 선전하기 위해 평양에 조성하고 있는 북한판 신도시다.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평양 대성산구역 금수산기념궁전과 룡흥네거리 사이 부지에 북한에서 가장 높은 70층대 초고층 아파트를 포함해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과학자들을 위한 주택 44동(4804가구)과 학교·탁아소·유치원 등 편의 시설 28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북한 일반 주민의 삶과 동떨어진 려명거리의 화려함을 꼬집어 ‘평해튼(평양+맨해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진짜 평해튼은 중구역 창전거리에 이미 건설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려명거리는 당초 지난해 말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지난해 9월 함경북도 지역의 대규모 수해와 자재난 등으로 인해 완공이 미뤄졌다. 데일리NK는 “려명거리 건설 자재를 충당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냄비와 연탄집게, 부지깽이 등 살림 도구까지 바치라는 강요를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달 초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평양 려명거리 건설 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실었다.

당시 신문은 최룡해가 “현장 시찰을 했다”고만 전했으나 1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건설 현장에서 구조물 붕괴 사고로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보고를 받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사고 수습과 함께 사고 경위 파악을 위해 즉각 노동당 부위원장 최룡해를 보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사고 뒤처리를 위해 정권 2인자를 현장에 급파할 정도로 김정은의 려명거리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고 했다.

올 초 김정은은 려명거리 건설 현장을 직접 방문해 올해 김일성 생일 4월 15일까지 완공을 지시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정해준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속도전을 벌이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려명거리 건설에 공을 들이는 것은 대북 제재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의도라며 특권층만을 위한 전시용이지 전체 민생을 생각하는 사업은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다.

앞서 김정은은 평양과학자거리 등 일부 신건물 창조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그 규모에서 여명거리를 능가하기는 어렵다. 김정은 집권 만 5년째인 올해 대규모 여명거리 건설을 완성함으로써 김정은은 “자! 보라. 이게 내 능력이다”라고 과시하려 하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즉 평양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 냄으로써 김정은 시대의 뉴랜드마크를 창조하고 통치의 ‘위대성’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한편 김정은 시대 건설을 추진하는 새로운 역량으로 북한이 청년동맹 산하에 216사단을 조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일 “1월 말 현재 216사단 혜산-삼지연 철길 건설여단 남포시연대의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이 몇 년이 걸려야 할 노반, 차굴(터널), 소구조물 공사를 단 1년 남짓한 기간에 끝내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이 언급한 공사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활동 성지(聖地)’로 삼지연 군을 조성하기 위해 추진 중인 김정은 체제의 역점사업 중 하나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7월 중순 백두산영웅청년 3호발전소를 둘러보면서 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던 돌격대원들을 삼지연군 건설사업에 투입하도록 직접 지시했을 정도다. 해당 돌격대는 북한의 2인자로 군림하는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청년동맹의 산하 조직이다.

북한 매체에 216사단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11월 14일로서 조선중앙통신은 당시 함경북도 수해복구 작업에 공로를 세운 단체들을 발표하면서 216사단을 언급했다. 특히 216사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 16일, 광명성절)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216사단은 혜산-삼지연 철길건설여단과 백두산영웅청년여단, 618건설여단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청년동맹이 운영 중인 돌격대 가운데 사단 규모는 처음인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가 발간한 ‘주요기관단체 인명록’ 등에 따르면 청년동맹은 산하에 7개 여단과 건설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평양과 나선, 남포, 9개도(道)에 각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군대와 보안성에 이어 이제 청년동맹에도 사단급의 건설대가 등장함으로써 북한의 건설은 현대화가 아닌 재래식 ‘돌격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