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1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에서 중요한 증언을 했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도 차명폰이 있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렇다”고 답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불법 차명폰, 일명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말인데 정말 믿기지 않는 얘기다. 일국의 통치권자인 대통령까지 대포폰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불법 도청이 만연한 정보 후진국이란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뭔가 불법적인 일을 하기 위해 처음부터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대포폰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우리 정치의 좀 아픈 부분인데, 역대 정권에서 도·감청 논란이 많지 않았느냐”며 “대통령과 통화하고 이런 부분이 도청 위험성이 있을 수 있어 저희 이름으로 사용된 걸 통해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정 전 비서관의 해명에 동의할 수 없다. 도·감청 때문이기보다는 불법행위에 대한 두려움과 그 증거를 없애려는 의도가 더 컸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더라도 그 대포폰은 불법과 탈법적인 일에 자주 동원됐다. 대포폰 몇 개를 들고 다녔다는 최순실의 행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설사 열 번을 양보해서 정 전 비서관의 말을 수용하더라고 문제는 간단치 않다. 우리 정치의 ‘아픈 부분’이라며 도청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은 사실 더 심각하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권력의 핵심 실세들까지 도청 위험성 때문에 대포폰을 쓴다면 일반 국민은 어떻게 마음 편히 통화를 할 수 있겠는가. 아예 공안당국이 도청을 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통화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더욱이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관계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들도 모두 대포폰으로 연락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야당 정치인들은 또 어떻게 하란 말인가. 거의 ‘통화 공포감’에 사로잡힐 일 아니겠는가?

우리는 정호성 전 비서관의 대포폰 발언을 예사롭게 넘겨선 안 된다. 청와대 권력 핵심부가 최순실 관련 일들을 대포폰으로 연락했다는 것은 단순한 국정농단을 넘어 ‘헌정질서 문란’에 다름 아니다. 그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혹여 불법 도·감청이 있다면 이를 색출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정부의 최고 책임자들이 스스로 그 도·감청이 두려워 불법적으로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민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를 믿는다. 아니 믿고 싶을 것이다. 설마 대통령이 국가권력을 ‘사유화’ 했겠으며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공안당국이 들여다봤을까 생각할 것이다. 이런 순박한 국민의 신뢰에 청와대 권력은 철저하게 배신을 한 셈이다.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참담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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