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돌아왔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저명인사요, 글로벌 외교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10년의 임기를 무난히 마치고 귀국하는 그의 발걸음은 당연히 가벼워야 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발걸음이 편치 못했을 것이며, 어깨도 무거웠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을 유력한 대선주자로 믿고 있는 지지자들을 생각하면 밤잠을 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그가 위풍당당하게 인천공항으로 귀환했다.

어설픈 대선행보, 공감도 부족했다

어쩌면 반기문 전 총장은 천운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그는 외교관 생활을 사실상 마쳐야 할 상황에서 정치적 인연으로 외교부 장관까지 올랐다. 보통 관운을 넘어섰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마침 유엔 사무총장직에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외교장관을 맡았던 시기에 이런 기회가 온다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다. 이 또한 행운이다. 그런데 또 이것이 다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유엔 사무총장직에 거의 다가섰던 모 인사가 좋지 않은 일로 낙마하는 바람에 대안이 필요했고 반 전 총장이 그 자리로 가게 된 것이다. 이는 천운이 아니면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운도 실력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반 전 총장에게는 유엔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나서도 더 큰 행운이 찾아왔다. 10년 임기를 마치는 즈음에 한국의 대선정국과 맞물리면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정치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결국 반 전 총장은 장고 끝에 대선에 출마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어쩌면 이번 대선정국을 주도할 태풍이 몰려오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높았던 것일까. 반 전 총장의 지난 일주일은 한마디로 실망과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금의환향은 아니어도 국민의 꽉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강력한 레토릭’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이미 익숙한 ‘정치교체’라는 표현 외에는 평범했다. 아니 식상한 정치언어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서민행보를 한답시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공감은커녕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쇼’로 보였다. 기획도, 메시지도 그리고 스토리도 부족했다. 더욱이 주변에 구태의연한 인물들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진정성마저 떨어졌다. 뭔가 어설프고 준비되지 않은 ‘아마추어’ 같은 모습만 깊이 각인돼 버렸다.

물론 지난 일주일의 논평에 불과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반 전 총장은 신선한 이미지가 최대 강점이다. 낡고 병든 기성 정치권과는 결을 달리한다. 게다가 국가의 품격을 담보할 수 있는 외교역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다면 우물쭈물 하거나 외곽을 도는 듯한 기회주의적 행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선은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선마저 천운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당당하게 싸워가야 한다. 그렇다면 유능하고 참신한 장수들부터 모아야 한다. 그런 준비마저 부족하다면 굳이 정치판에 나올 필요가 없다. 대선은 게임이 아니라 전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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