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주 모 대학 강의 때 있었던 일이다. ‘스포츠 산업과 관련해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에 대해 얘기하고 미래의 전망을 설명하라’는 과제를 부여받은 학생들은 다양한 내용들을 공개발표했다. 축구특기생인 한 학생의 발표가 흥미를 끌었다. 대부분 특종 종목과 관련한 자신의 개인 스토리를 소재로 스포츠 산업의 꿈과 희망에 관한 발표를 했으나 그는 조금 다른 주제를 다루었다. 그는 ‘공부와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이유는 현재 축구선수로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가야 할 꿈이 분명히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생은 운동선수로서의 경험을 깊은 성찰과 분석을 통해 소개하며 ‘김영란법’으로 방황하는 자신을 비롯한 체육특기자 학생들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많은 고민을 갖고 있다고 했다. 현실과 이상 속에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선택과 방황을 하는 주위의 일반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 스스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다. 학생은 운 좋게도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 자신은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며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어려서부터 다소 개방적이었던 부모님께서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말을 해준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자연스럽게 해야 할 일이었던 ‘축구’를 하면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듯싶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 맞닥뜨린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축구를 하면서 얻는 것만큼이나 잃는 것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새벽 운동이 끝난 뒤 들어가는 강의실에서의 수업은 잃어버린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 같았다. 남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그라운드의 모습과는 달리, 강의실에만 들어서면 겁먹은 망아지나 다름없었다. 교수님이 질문을 할까봐 두려워 눈을 피하기 일쑤였고,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영어수업에서는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해 엎드린 채 잠자는 척 하다가 이내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강의에 들어가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체육 특기자들도 그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일명 ‘김영란법’은 그를 비롯한 체육 특기자들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운동선수들의 출석이 더욱 엄격히 적용됐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운동선수들의 성적, 수업 출격처리를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이를 위반한 선생, 지도자들도 처벌을 받도록 했다. 그는 금품수수와 청탁금지에 관련한 법이 왜 체육계까지 흔들고 있는지 자세히 모르겠고, 그 때문에 지금껏 공부를 하지 않았던 모든 특기자 학생들이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엘리트 스포츠를 집중 육성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두며 눈부신 성과를 올렸으나 한편으로는 많은 부작용도 생겼다. 성적지상주의는 선수들을 ‘운동’으로만 내몰았고, 학교와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각종 청탁과 비리가 이어졌다. 중도에 선수생활을 포기하거나 은퇴 후 선수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수십년간 누적된 우리나라 체육의 문제는 아직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시행된 ‘김영란법’은 학생 선수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고 말했다. “이번 ‘김영란법’ 시행으로 선수들이 학업에 대한 의식과 인식이 조금 개선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법률이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 구조의 틀을 변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작은 것부터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가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태까지 펜을 들지 않았던 선수들이 갑작스레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수들이 스스로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절한 정책으로 스포츠 시스템을 변화해 나갈 때 스포츠 선진국과 같은 스포츠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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