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홍문의 연회에서 위기를 느낀 유방 일행은 화장실을 빌미로 밖으로 나온 뒤 그 길로 군문을 빠져 나왔다. 유방은 연회석의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항우와 범증에게 줄 선물도 전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항우의 홍문 진영과 유방이 포진한 패상 진영은 불과 40리였다. 유방은 경비병과 자신의 수레를 놓아 둔 채 혼자 말 등에 올랐다. 그 뒤를 번쾌, 하우영, 근강, 기신 네 사람이 칼과 방패만 든 채 뒤따랐다. 

일행은 역산 기슭을 거쳐 지양으로 통하는 사잇길로 빠져 나갈 생각이었다. 그곳을 떠나면서 유방은 장량에게 선물을 항우에게 대신 전하도록 부탁하며 말했다. 

“이 길로 곧장 가면 우리 군영까지는 불과 이십리 길, 잠깐이면 갈 수 있소. 내가 우리 군영에 도착할 때쯤 귀공은 항우의 연회석에 되돌아 가도록 하시오.” 

홍문을 탈출한 유방 일행이 무사히 패상에 도착했을 때쯤 장량은 항우에게 되돌아가 사죄를 하였다. 

“패공은 원래 술에 약하여 대왕께 작별 인사도 못 드릴 형편입니다. 명령에 의하여 제가 대신 백벽 한 쌍을 대왕께, 그리고 옥두 한 쌍을 대장군께 바칩니다. 부디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패공은 지금 어디 있소?”

“대왕께로부터 꾸지람을 들을까 염려되어 혼자 빠져 나갔습니다. 어쩌면 이미 패상의 군영에 돌아가 있을 것입니다.”

항우는 백벽을 받아들고 방석 위에 놓았다. 그러나 범증은 옥두를 받아들자마자 땅에 놓고 칼을 뽑아 박살을 내버렸다. 그런 다음 탄식했다. 

“이렇게 세상일을 모르는 사람(항우)과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항우의 천하는 반드시 패공에게 빼앗기게 되리라. 그리고 우리는 머지않아 유방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 

홍문을 도망쳐 나온 유방은 패상의 진영에 도착한 즉시 조무상을 잡아 죽여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항우는 군사를 이끌고 함양에 들어가 대학살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이미 항복한 진나라 왕 자영을 죽이고 궁궐에는 불을 질렀다. 그 불은 석 달 동안이나 계속 타고 있었다. 

항우는 궁궐의 모든 보물과 여자들을 차지하고 동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를 지켜본 어떤 사람이 항우에게 건의했다. 

“관중은 사방이 물과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이며 또한 땅도 기름집니다. 도읍으로 정하고 천하를 호령하기에는 다시없는 좋은 곳인데 왜 돌아가시려고 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항우는 궁궐은 이미 불을 지른 뒤였고 대업을 이룬 탓인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해질지라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헛수고야. 금의를 걸쳤으면 환향을 해야지. 금의를 걸치고 깜깜한 어둠 속을 거닌들 무슨 소용인가.”

항우의 그 말을 들은 그는 중얼거렸다. 

“초나라 녀석들은 원숭이가 갓을 쓴 꼴이라더니, 그 말이 과연 맞군.”

그 말을 들은 항우는 몹시 화를 내고 그를 가마솥에 넣고 삶아 버렸다. 

드디어 항우는 군사를 되돌리면서 회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관중을 평정한 것을 전했다. 그러자 회왕에게서 답신이 왔다. 

“약속대로 이행하라.”

그 명령을 받은 항우는 우선 회왕을 받들어 의제로 칭하도록 했다. 다음에는 항우도 왕이 되어야 할 차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장군이나 대신들도 동시에 왕으로 봉할 필요가 있었다. 

항우는 그들을 부른 자리에서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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